책을 되새김질하다

현대시작법

대빈창 2017. 12. 8. 07:00

 

 

책이름 : 현대시작법

지은이 : 오규원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왕자가 아닌 한 아이에게』(1978, 문학과지성사)

『현대시작법』(1990, 문학과지성사)

『분명한 사건』(재간행본 / 2017, 문학과지성사)

 

내 책장에 가지런히 어깨를 겯은 시인의 책들로 초판 발행년도와 출판사 이름이다. 시인 오규원(1997 ~ 2007)은 66살로 타계한 지 정확히 10주년이 되었다. 시인은 자신의 시 「나무 속에 잠들다」처럼 강화도 전등사 부근 아름드리 소나무 밑에 영원히 잠들었다. 시인은 서울예대 문창과 교수로 20여년 교편을 잡았다. 제자들 각자의 개성을 살려 스스로 시 쓰기 방법론을 깨우쳐주는 교수법은 수많은 문인을 길러냈다. 일일이 손으로 꼽을 수 없는 시인 가운데 강화도의 시인 함민복도 이름난 제자였다. 시인 친구는 오래전 술자리에서 이렇게 우스갯소리를 했다. “스승의 능참지기라는 막중한 소명을 맡아 덧없이 기쁘다.”

 

한적한 오후다 / 불타는 오후다 / 더 잃을 것이 없는 오후다 / 나는 나무 속에서 자본다

 

세상을 떠나기 열흘 전 병상에서 제자 이원의 손바닥에 남겼다는 시인의 짧은 절명시(絶命詩)다. 시인은 40년 세월 가까운 동안 10편의 시집을 남겼다. ‘언어에 대한 예민한 자의식에서 광고 언어를 패러디한 사회 풍자, 관념의 개입 없이 사물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날(生) 이미지 시’까지 다양한 시적 모색을 해 온 시인은 자신의 시론을 창작법연구서 『현대시작법』을 통해 공론화했다. 독자적 시론의 오규원은 '시적 언술은 묘사와 진술 두 축을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은 수사학적 접근의 결과다. 시적 대상의 인식 방법의 차이가 수사적 차이를 동반한다. 시는 묘사라는 수사법을 중심축으로 하는데, 느낌을 구조화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인의 창작 교육도 이런 특성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문청시절 나는 소설을 습작하면서 소설 창작 이론서를 십 여 권이나 잡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그 많은 책들은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겉핡기식 책읽기가 문제였지만, 시인의 말을 빌리면 “창조하는 즐거움보다 결과만 탐하게 되어, 남의 것을 모방하게 되고, 얻어들은 지식을 나열하게 되고, 자주 허황되게 꾸미게 되는 것”을 벗어나지 못했다. 나도 이제 세상을 관조할 나이가 되었다. 친구시인은 스승에게 어떤 수업을 받았을까하는 궁금증이 일었다. 책을 손에 넣었다. 500여쪽에 가까운 분량의 딱딱한 이론서를 곁에 두고 틈날 때마다 펼쳐야겠다. 나는 이제 다독(多讀)아닌 정독(精讀)이 필요한 나이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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