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청산행
지은이 : 이기철
펴낸곳 : 민음사
그는 다만 오십 평생을 흙과 더불어 살았고 / 유월의 햇살과 고추밭과 물감자꽃을 사랑했고 / 토담과 수양버들 그늘과 아주까리 잎새를 미끄러지는 / 작은 바람을 좋아했다 / 유동꽃 이우는 저녁에는 서쪽 산기슭에 우는 / 비둘기 울음을 좋아했고 / 타는 들녘끝 가뭄 속에서는 소나기를 날로 맞으면서 /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한 농부의 추억」의 2연이다. 평생을 흙을 일구다 흙으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올렸다. 그동안 나는 농업·농촌·농민을 노래한 시를 찾았다. 우연히 만난 시에 화들짝 눈이 떠졌다. 뒤늦게 시집을 접한 나의 헐거운 그물망에 시인은 없었다. 고향에서 강제로 밀려난 이농민들의 상실과 애환을 노래한 시인은 올해 열여덟 번째 시집 『흰 꽃 만지는 시간』(민음사)를 펴냈다. 최근 시집은 ‘자연과 사물의 생명력, 삶의 의미’를 시에서 찾았다.
시가 실린 시집을 찾았다. 두 번째 시집 『청산행』에 실렸다. 다행히 온라인 서적에 시집은 고개를 내밀고 있었다. 급하게 나는 시집을 손에 넣었다. 아뿔싸! 이럴 수가 시집에 시가 없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을까. ‖후기‖에 나의 착각의 이유가 밝혀졌다. 시선집 『청산행』은 시인이 등단 한 후 스물여섯 해 동안 펴낸 여덟 권의 시집에서 78편의 시를 선했다. 내가 찾던 두 번째 시집 『청산행』에 실렸던 「한 농부의 추억」은 선(選)에서 빠졌다.
문학평론가 김우창은 해설 「자연 소재와 독특한 정서」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기철은 자연을 말하는 시인이다. 그 동안의 시에서 그는 우직할 정도로 자연과 농촌적인 삶에 집착하고 거기에서 삶과 시의 가치를 얻어내려고 하였다.”(155쪽) 시인의 고향은 경남 거창 가조 석강리로 전주이씨 열댓 가구가 모여 살던 산골이었다. 산줄기가 병풍처럼 둘러친 산중에 좁은 논밭을 일구어 대대로 가난을 천명처럼 살아가던 마을이었다. 마지막은 표제작이면서 첫 시인 「청산행」(11쪽)의 부분이다.
서쪽 마을을 바라보면 나무들의 잔숨결처럼 / 가늘게 흩어지는 저녁 연기가 / 한 가정의 고민의 양식으로 피어 오르고 / 生木 울타리엔 들거미줄 / 맨살 비비는 돌들과 함께 누워 / 실로 이 세상을 앓아 보지 않는 것들과 함께 / 잠들고 싶다.
'책을 되새김질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미움의 힘 (0) | 2018.01.18 |
---|---|
순이 삼촌 (0) | 2018.01.12 |
미국의 한반도 개입에 대한 성찰 (0) | 2018.01.08 |
손잡고 더불어 (0) | 2018.01.05 |
예수는 어떻게 신이 되었나 (0) | 2017.12.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