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대빈창 2018. 1. 29. 07:00

 

 

책이름 :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지은이 : 박형준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한국 서정시의 전통을 가장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있는 시인’으로 평가받는 시인의 시를 처음 만났다. 문인들이 뽑은 2011년 가장 좋은 시집인 박형준의 다섯 번째 시집 『생각날 때마다 울었다』 이었다. 그렇다고 시인에 대해서 과문했던 것은 아니었다. 친구 시인 함민복이 손꼽은 동문이 배출한 뛰어난 시인중 한 사람이 박형준이었다. 아둔한 나는 시인을 만날 기회를 무심결에 자꾸 미루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계단의 끝」(86 ~ 87쪽)이 눈에 들어왔고 그제야 나는 시집을 손에 넣은 연유를 눈치 챘다. 시편의 부제가 -여림을 추억함- 이었다. 재간행 전문출판사 〈최측의농간〉이 펴낸 故 여림의 전집 『비 고인 하늘을 밝고 가는 일』에 발문이 세 편 실렸다. 한 분은 고인의 스승이고, 두 분은 동문 친구로 모두 시인이었다. 스승은 시인 최하림으로 고인은 스승의 이름 끝 자를 빌려 필명을 여림이라 지었다. 시편 「대지에 기도를 올리는가」(183쪽)의 부제가 -최하림 선생님께- 였다.

시집은 3부에 나뉘어 정확히 100편이 실렸다. 해설은 시인 강정의 몫으로 ‘숨은 빛 -단편영화 「푸르른 운석」(가제) 촬영기’로 새로운 글쓰기 형식의 기발함에 나의 눈길이 한참 머물렀다. 제1부 ‘아버지의 죽음에 바치는 노래’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시 20편이 묶였다. 「무덤 사이에서」(42 ~ 43쪽)의 일부분이다.

 

논과 밭 사이에 있는 우리나라 무덤들은 매혹적이다.

죽음을 격리시키지 않고 삶을 껴안고 있기에,

둥글고 따스하게 노동에 지친 사람들의 영혼을 껴안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나라 봉분들은 밥그릇을 닮았다.

조상들은 죽어서 산 사람들을 먹여 살릴 밥을 한 상 차려놓은 것인가.

내가 찾아 헤매고 다니는 꽃과 같이 무덤이 있는 들녘.

산 자와 죽은 자가 연결되어 있는

밥공기와 같은 삶의 정신.

푸르고 푸른 무덤이 저 들판에 있다.

 

시인은 전북 정읍의 가난한 농사꾼의 2남6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글을 모르시는 단신의 아버지는 평생 땅만 일구셨다. 시인은 열두살에 도시생활을 시작했다. 공장을 다니던 형·누나와 함께 인천 수문통에서 살았다. 시집에 실린 연작시 ‘수문통(水門通)’은 제물포항의 만석동에서 송림동까지 해안가 저지대였다. 바닷물의 역류를 차단하는 문(門)이 있어 불리게 된 이름이었다. 갈대만 무성한 공유수면으로 80년대 말 도로로 복개되었다. 한국전쟁후 피난민들의 판자촌이 형성되었다. 시인은 남루한 달동네의 현실을 문학을 매개로 탈출을 시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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