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이연주 시전집
지은이 : 이연주
펴낸곳 : 최측의농간
겉표지와 속표지 모두 올불랙이다. 뒤표지의 하얀 바코드가 도드라져 보일 뿐이다. 죽음의 새 까마귀와 상복이 연상되었다. 시인은 서른아홉의 이른 나이에 스스로 생을 놓았다. 파독간호사로 귀국후 의정부 기지촌 인근병원에서 수간호사로 일했었다. 재출간 전문출판사 〈최측의농간〉은 고인의 시전집을 어렵게 준비했다. 극적으로 만난 시인의 남동생은 북디자이너였다. 책의 모든 디자인은 남동생 이용주 씨가 맡았다. 시전집은 시인이 세상을 떠난 지 24년 만에 나왔다.
시인 이연주(1953 ~ 1992)는 1989년 「죽음을 소재로 한 두 가지의 개성 1」으로 월간문학상 신인상을 받으며 문단에 등단했다. 이듬해 연말 첫 시집 『매음녀가 있는 밤의 시장』이 출간되었다. 시인은 다음 시집 원고를 출판사에 송고하고 생을 마감했다. 유고 시집이 『속죄양, 유다』였다. 시집을 읽어 나가다 나의 시선은 여기서 머물렀다. - 위험한 시절의 진료실·6 - 이라는 부제가 붙은 「탄생의 머릿돌에 관한 회상」의 4연이다. 시인은 실제 3개월 후 목숨을 끊었다.
1992년 8월 25일.
모르핀 치사량으로 죽은 내 忌日.
그 면도날, 팔목을 자르거나, 아니, 어쩌면
내가 벌거숭이로 태어나던
날, 내 忌日.
시전집은 첫 시집 『매음녀가 있는 밤의 시장』(세계사, 1991)의 91편, 유고 시집 『속죄양, 유다』(세계사, 1993)의 51편, 『풀밭창작동인집 2·3』에 실렸던 미발표작 24편과 시극 「끝없는 날의 사벽」 모두 167편이 실렸다. 시전집은 시인의 말, 해설, 발문, 표사가 일체 없었다. 시인의 작품만 온전히 실렸다. 천민자본주의와 가부장적 사회에서 이중으로 소외된 여성들의 삶을 적나라하게 묘사한 시인을 김정란(시인·문학평론가)는 이렇게 말했다. “그녀의 시적 자아는 스스로 매음녀가 돼 생의 바닥을 지렁이처럼 기어”간 것이라고. 마지막은 「매음녀 3」(42쪽)의 전문이다.
소금에 절었고 간장에 절었다
숏타임 오천원.
오늘밤에도 가랑이를 열댓 번 벌렸다
입에 발린 × ×, × × ×
죽어 널브러진 영자년 푸르딩딩한 옆구리에도 발길질이다
그렇다, 구제 불능이다
죽여도 목숨값 없는 화냥년이다
멀쩡 몸뚱어리로 뭐 할 게 없어서
그짓이냐고?
어이쿠, 이 아저씨 정말 죽여주시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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