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최순덕 성령충만기

대빈창 2009. 11. 2. 14:57

 

책이름 : 최순덕 성령충만기

지은이 : 이기호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이 작품집은 작가 이기호의 첫 소설모음집이다. 내가 작가의 소설을 처음 접해본 것은 대략 3년 전으로 기억된다. '백미러 사나이 - 사물이 눈에 보이는 것보다 가까이 있음'으로 어느 인터넷 문학 사이트에서 다운받아 읽었다. 나와 작가와의 인연은 하필이면 황당하다 못해 괴이한 설정으로 독자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데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는 작가답게 해적판으로서의 첫 만남이었다. 그 작품은 이 소설집에 실려있다. 하지만 당시 나는 머뭇거릴 수밖에 없었다. 출간된 지 몇년이 지난 소설집에 더군다나 흥미롭게 읽은 한 작품이 실려 있었기에. 괜히 아깝다는 생각이 든 것이다. 그런데 얼마 있다 반갑게도 작가의 두번째 작품집인 '갈팡질팡하다가 내 이럴 줄 알았지'가 출간되었다. 따끈따끈한 신간 소설집을 잡자, 작가는 나의 뇌리에서  멀어졌다. 다시 작가가 나의 인식 속으로 들어온 것은 시인친구 함민복을 통해서였다. 2009년 상반기 포털 사이트 '다음'에 문학작품이 연재되었다. 소설은 공지영의 '도가니'와 이기호의 '사과는 잘해요' 그리고 에세이로 시인 함민복의 글이 연재되고 있었다. 언젠가 볼음도에 머리를 식히러 온 시인과 나는 술잔을 기울였다. 그러다 '다음'에 연재하고 있던 작가 이기호가 화제에 올랐다. 시인과 작가의 인연은 안양예고를 매개로 한다. 두 작가는 문창과의 강사였던 것이다. 일주일에 두번은 강의로 학교에서 만나게 되었으니, 문단에서 두 작가의 선후배 관계는 누구보다 돈독했을 것이다. 그들에게 배웠던 학생이 대학을 졸업하고 '다음'에서 전공인 문예창작을 살려 기획한 문학 연재물에 스승을 초빙한 것은 당연하지 않은가. 그 연재물의 결과로 시인은 세번째 에세이 '길들은 다 일가친척이다'가 엊그제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그런데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 될 '사과는 잘해요'는 마땅한 출판사 물색이 지지부진한 지 감감무소식이다. 조만간 출간될 것이다.

이야기가 삼천포로 너무 멀리 빠졌다. 어쨋든 문학의 엄숙주의에 학을 띠거나. 기가 질린 독자들은 이기호의 소설을 잡아야 한다. 그럼 야! 우리나라 소설도 이렇게 재미있구나! 하는 감탄을 연신 내뱉으며 소설 읽는 맛에 빠질 것이다. 또한 이 작품집의 소설들은 기발한 소설적 형식으로 독자의 시선을 끈다. 작가의 등단작인 '버니'는 화자의 서술이 랩과 비트박스이며, '햄릿 포에버'는 피의자의 조서를  꾸미는 형식으로, '최순덕 성령충만기'는 성경처럼 활자가 인쇄되었다. 이 작품집에 수록된 8편의 단편소설에는 이 시대의 비루하고 미천한 인간 군상들이 등장한다. 그러기에 가볍기 그지없는 요즘 세태에서 오히려 문학적 진지함이 돋보인다.

 

p.s  이기호의 '사과는 잘해요'는 2009년 11월 12일 현대문학에서 출간되었다. 띠지의 'DAUM 연재 조회수 350만 건 기록!'이 말해주듯, 나는 그때 짬만 나면 연재되던 이기호의 소설을 읽었다. 그 여운이 아직 가시지 않았는 지 단행본으로 나온 작가의 첫 장편소설을 책장에 아직 방치(?)하고 있다.

'책을 되새김질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작은 것이 아름답다  (0) 2009.11.15
새들도 세상을 뜨는구나  (0) 2009.11.10
신은 존재하는가  (0) 2009.10.25
농부와 산과의사  (0) 2009.10.07
9월이여, 오라  (0) 2009.1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