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어떻게든 이별
지은이 : 류근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시집 - 『상처적 체질』(문학과지성, 2010), 『어떻게든 이별』(문학과지성, 2016)
산문집 - 『사랑이 다시 내게 말을 거네』(곰, 2013), 『함부로 사랑에 속아주는 버릇』(해냄, 2018)
활자를 통해 시인을 만난 것이 아니라, KBS 교양프로그램 〈역사저널 그날〉의 패널로 출연한 시인을 처음 보았다. 서글서글한 눈망울의 시인은 영상매체 시대에 어울리는 잘 생긴 이목구비의 소유자였다. 그는 시인에 앞서 우리 시대의 가창 故 김광석의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없음」의 작사가로 유명했다. 근래 들어 시집을 손에 가까이하던 나는 시인에 대한 풍문을 알고 있었다. 1992년 문화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다. 무슨 연유인지 모르겠으나 18년 동안 시 한편 발표하지 않았다. 2010년 수록작 전부가 미발표작인 첫 시집 『상처적 체질』을 펴냈다. 6년 만에 출간된 두 번째 시집 『어떻게든 이별』의 수록작도 대부분 미발표작이었다. 시인은 문예지에 시를 발표하고, 시간이 흘러 시집을 묶는 일반적 경로와 다른 길을 걸었다. 문예지의 청탁을 받지 못해 시와 무관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시집은 4부에 나뉘어 72 시편이 실렸다. 해설은 문학평론가 홍정선의 「상흔의 세월과 홀로 당당해지려는 의지」였다. 문학평론가가 반가웠다. 90년대 나는 소설습작에 매달렸다. 그 시절 손에 잡았던 문학지들에서 시는 황지우, 소설은 이인성, 번역은 김석희, 문학평론은 홍정선이 가장 눈에 뜨였다. 문학평론가가 ‘(시인의) 관심사는 모두에게 익숙한 연애, 추억, 음주, 육체와 관련된 일상적 사건’이라고 말했듯이, 시집은 어렵지 않게 읽혔다. 스스로 ‘삼류 연애 시인’이라 자처하는 시인의 시론을 들어보자. “요즘 시는 너무 어려워서 시를 쓰고 공부하는 저 같은 고급 독자도 이해하기 힘들어요. 너무나 높이, 멀리 가 있습니다. 자기들만의 리그, ‘이너 서클’에 들어가 있는 것 같아요. 물론 언어와 의식과 표현의 확장이라는 점에서 나름의 역할이 있겠지요. 그러나 독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합니다. 저는 가능한 한 쉽게,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독자에게 다가가고자 합니다.” 마지막은 표제시 「어떻게든 이별」(24 ~ 25쪽)의 1연이다.
어제 나는 많은 것들과 이별했다 작정하고 이별했다 맘먹고 이별했고 이를 악물고 이별했다 내가 이별하는 동안 빗방울은 구름의 자세와 이별했고 우산은 나의 신발장과 이별했고 사소한 외상값은 현금지급기와 이별했다 몇몇의 벌레들은 영영 목숨과 이별하기도 하였다 어제는 어제와 이별하였고 오늘은 또 어제와 이별하였다 아무런 상처 없이 나는 오늘과 또 오늘의 약속들과 마주쳤으나 또 아무런 상처 없이 그것들과 이별을 결심,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