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옛글 백가지

대빈창 2018. 10. 1. 07:00

 

 

책이름 :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우리 옛글 백가지

옮긴이 : 조면희

펴낸곳 : 현암사

 

인천 부평 한겨레문고의 심벌마크가 파란색 잉크로,1998. 9. 2 책을 손에 넣은 날짜가 붉은 잉크 스탬프로 책술에 찍혔다. 초판 1쇄는 97년 2월에 출간되었다. 책장에 〈현암사〉가 1997년부터 펴내기 시작한 『우리가 정말 알아야 할』 시리즈 중 몇 권이 꽂혔다. 20여 년 전 손에 잡았던 책을 다시 펼쳤다. ‘상정일련(嘗鼎一臠)’ 옮긴이가 머리말에서 한 말이다. 큰 솥 안에 국이 끓고 있을 때, 한술만 떠먹어도 그 국의 맛을 알 수 있다는 뜻이다. 책은 선현들의 문집에서 1백편의 글을 골라 한글로 풀어 엮어 놓았다.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신라, 857 ~ ?)의 「황소에게 보내는 격문(檄黃巢書)」에서 영조(조선, 1694 ~ 1776)의 「효순왕후묘지(孝順王后趙氏英祖大王御製墓誌)까지 고려·조선의 명문장가 64분의 글이 실렸다. 글은 가전체 소설에서 주위 사람의 죽음을 애달파하는 제문, 나라가 위기를 맞아 사람을 모으는 격문, 이웃 국왕에게 보내는 국서, 임금에게 올리는 상소문, 뛰어난 경치를 찾아 떠난 기행문, 건축물을 새로 짓거나 수리하고 지은 기문, 시골로 낙향하여 자연을 즐기는 가벼운 수필 등 거의 모든 장르가 망라되었다. 3 ~ 4 쪽 정도의 분량으로 읽기가 편했다. 작품 끝에 옮긴이의 간단명료한 해설이 덧붙여져 독자의 이해를 도왔다.

채수(蔡壽, 1449 ~ 1515)의 「돌산의 인공 폭포(石假山瀑布記)」를 잡다가 나는 스크랩북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렇다. 조선시대 최고의 필화사건을 일으킨 「설공찬전(薛公瓚傳)」의 작자였다. 「설공찬전」은 우리가 배운 최초의 한글소설 「홍길동전」보다 100여년 앞선 중종 때의 작품이었다. 『옛글 백가지』의 초판은 97년 2월에 나왔고, 최초의 한글 소설은 그해 4월에 발견되었다. 내용이 문제가 되어 왕명에 의해 불태워져 기록으로만 알려졌던 최초의 한글소설은 5백년 만에 기적처럼 우리 앞에 나타났다. 국사편찬위원회가 충북 괴산 성주 이씨의 문고를 연구·조사했다. 이문건(1494 ~ 1567)의 「묵재일기(黙齋日記)」의 낱장 속면에 필사되어 있던 한글본을 찾아냈다.

김득신(金得臣, 1604 ~ 1684)의 「관동별곡에 대한 소감(關東別曲序)」과 「문학 동호회에 대한 소감(文會稧序)」의 글을 읽다가 나도 모르게 입가에 웃음을 지었다. 착각이었다. 한자마저 똑같은 동명이인이었다. 글을 쓴 김득신은 호가 백곡(栢谷)으로 시인이었다. 풍속화로 유명한 김득신(1754 ~ 1822)은 호가 긍재(兢齋)로 조선 영조 ~ 순조년간 도화서 화원 집안 출신이었다.

한적한 시골의 봄날. 노부부가 마루에 앉아서 돗자리를 짜고 있었다. 마당에서 어미닭이 평화롭게 병아리를 데리고 모이를 쪼았다. 도둑고양이가 병아리 한 마리를 채어 달아났다. 놀란 영감은 담뱃대를 휘저으며 탕건이 벗겨진 채 버선발로 마당에 뛰쳐 나가고, 아낙도 뒤에서 일어선 채 소리를 내 질렀다. 놀란 네 마리의 병아리는 혼비백산 달아나고, 암탉은 날개깃을 세우며 고양이에게 덤벼들었다. 김득신의 「파적도(破寂圖)」는 약을 올리는 듯 병아리를 입에 문 고양이의 결정적 순간을 잡아 그림을 보는 이로 하여 웃음을 짓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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