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가뜬한 잠

대빈창 2018. 10. 22. 07:00

 

 

책이름 : 가뜬한 잠

지은이 : 박성우

펴낸곳 : 창비

 

시인의 2000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등단작인 「거미」에 끌렸다. 예의 강박적 조급증이 발동되었다. 시인이 지금까지 펴낸 시집 네 권을 손에 넣었다. 펴낸 순서대로 손에 잡았다. 제25회 신동엽창작상 수상시집인 두 번째 시집은 3부에 나뉘어 모두 55편이 실렸다. 해설은 원로 문학평론가 염무웅의 「슬픔은 영혼을 정화한다」 였다. 문학평론가는 시인을 백석과 동일선상에 놓고 찬사를 보냈다. 백석은 일본 유학에서 프랑씨스 잠과 릴케에게 모더니즘 세례를 받았다. 하지만 시에서 향토성과 지방 언어를 고수했다. 복고주의와 지방주의의 전향이 아닌 식민지적 현실에 대한 계산된 저항과 자기방어였다. 박성우의 토속주의와 전원 문학은 시대의 고통을 느끼는 자의 숨결이었다.

두 번째 시집은 내가 그동안 눈에 불을 켜고 찾았던 농업·농촌·농민시였다. 적지 않은 시편들이 농촌공동체와 전통적 사회안전망이 무너져가는 안타까운 현실과 농촌 사람들의 순박한 유쾌함과 따뜻한 풍경을 그렸다. 신동엽 창작상 심사위원들은 이렇게 평했다. “농촌의 외롭고 고단한 인심을 따뜻하게 껴안는 순정의 힘을 느끼게 해준다.”고. 나의 마음에 가장 울림을 준 시는 표제시로 두 번째 詩인 「가뜬한 잠」(11쪽)이었다.

 

곡식 까부는 소리가 들려왔다 // 둥그렇게 굽은 몸으로 / 멍석에 차를 잘도 비비던 할머니가 / 정지문을 열어놓고 누런 콩을 까부르고 있었다 / 키 끝 추슬러 잡티를 날려보내놓고는, // 가뜬한 잠을 마루에 뉘였다 // 하도 무섭게 조용한 잠이어서 / 생일 밥숟갈 놓고 눈을 감은 외할매 생각이 차게 다녀갔다

 

시인은 할머니가 고된 노동에서 오는 피곤함으로 가뜬한 잠에 떨어진 것을 보고, 외할머니의 죽음을 떠올렸다. 어머니는 낮잠을 한 숨도 주무시지 않았다. “우두커니 있으면 뭐하니?”가 어머니의 생활방침이었다. 일거리가 손에 들리지 않으면 어머니는 이웃집에 마실을 가셔서라도 우두커니 있지를 못하셨다. 365일 고정채널의 연속극이 끝나면 9시에 잠드시고, 새벽 3시쯤에 깨셨다. 큰 수술을 두 번이나 받으신 어머니는 몸에 설은 침대잠을 누우셨다. 방이 좁아 몸피가 작으신 어머니는 아동용 침대를 쓰셨다. 한밤중 가위에 눌리신 어머니의 비명이 고막을 찢었다. 마루를 건너 작은 몸을 웅크린 어머니의 어깨를 가만히 흔들었다. 아침을 드시고 어머니는 커피 한 잔을 앞에 놓고 식탁에 앉으셨다. 낮잠을 쫒기 위한 한결같은 모습이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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