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나의 방랑

대빈창 2018. 10. 29. 07:00

 

 

책이름 : 나의 방랑

지은이 : 아르튀르 랭보

옮긴이 : 한대균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대산문화재단이 지원하고 〈문학과지성사〉가 펴내는 대산세계문학총서의 외국시집 세권 째를 손에 넣었다. 시리즈 062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의 시선집 『끝과 시작』, 시리즈 081 - 다니카와 슌타로 시선집 『이십억 광년의 고독』, 그리고 시리즈 123- 아르튀르 랭보의 운문시모음집 『나의 방랑』이었다. ‘천재 시인’ 랭보의 시집을 뒤늦게 손에 넣는 계기는 기형도의 유고시집 『입 속의 검은 잎』과 판박이였다.

80년대의 마지막 해 초여름 어느 날이었다. 만물이 생동하고 꽃들이 만개하고 날씨는 화창한 그날 일군의 문청들이 거나하게 막걸리에 취해 있었다. 어떤 연유였는지 평소 별로 어울리지 않던 그들과 나는 외떨어진  문우의 자취방에서 상춘의 기쁨을 취중에 실어 왁자하게 떠들고 있었다. 그때 누군가의 입에서 낯선 이름이 불려 나왔다. 아. 르. 튀. 르. 랭. 보. 그 여섯 음절이 누군가의 입에서 뱉어지자, 좌중의 분위기가 일거에 블랙홀처럼 빨려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자식들! 이 엄혹한 시기에 시 나부랭이나 읊조리다니. 그 시절 나의 무지는 상대를 찾기 쉽지 않았다. ‘랭보’를 처음 접한 국문학도라니.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늦은 나이에 시집을 가까이 하면서 간혹 외국 시집을 손에 넣었다. 저 먼 기억의 파편 한 조각. 그 유명한 천재시인의 『지옥에서 보낸 한 철』이 떠올랐다. 하지만 손은 시인의 인생역정을 드러난 표제, 『나의 방랑』을 집어 들었다. 시집은 1부 운문시 44편, 2부 자유운문시 11편. 시편 분량의 옮긴이의 두툼한 각 주와 해설 「끝나버린 시, 끝이 없는 시」, 작가 연보로 구성되었다.

 

나는 갔다네, 터진 주머니에 주먹을 쑤셔 넣고서. / 내 외투 또한 이상적으로 되었지. / 하늘 밑을 걸었고, 뮤즈여! 나는 그대의 충복이었네. / 아아! 내 얼마나 찬란한 사랑을 꿈꾸었던가! // 내 단벌 바지에는 커다란 구멍이 하나. / ―꿈꾸는 엄지동자, 나는 내 길에서 낟알처럼 / 시의 운을 땄다네. 내 여인숙은 큰곰자리. / ―내 별들은 하늘에서 부드럽게 살랑살랑대고 // 나는, 길섶에 앉아, 귀 기울였네, / 이마에 내리는 이슬방울이, 힘 돋우는 / 술처럼 느껴지는, 이 9월의 상큼한 저녁에, // 기이한 그림자들에 둘러싸여 운을 밟으며, / 칠현금이라도 켜듯, 한 발을 가슴 가까이 들어 올려, / 찢어진 신발의 고무줄을 나는 잡아당겼네!

 

시인이 열여섯 살에 썼다는 표제시 「나의 방랑(환상곡)」(72쪽)의 전문이다. 19세기 후반 프랑스 상징주의 시의 선구자 장 니콜라 아르튀르 랭보(Jean Nicolas Arthur Rimbaud, 1854 ~ 1891)의 작품들은 모두 십대 시절에 쓰였다. 1875년 스무 살의 나이에 절필을 선언하고 문단을 떠났다. 시인은 이후 유럽, 중동, 자바, 아프리카를 전전하며 노동자, 용병, 커피 장사, 무기상으로 일했다. 병이 들어 고국 프랑스로 돌아와 다리 절단 수술을 받고 숨진 해가 시인의 나이 37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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