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뒷집 새끼 고양이 - 17

대빈창 2018. 8. 20. 05:37

 

 

 

위 이미지는 열흘 전 텃밭 정경입니다. 어머니가 텃밭으로 내려서는 경사면의 폭염에 늘어진 호박덩굴을 돌보고 있습니다. 노순이가 들깨 몇 포기뿐인 맨 땅이 드러난 두둑 한가운데서 혼자 장난을 치고 있었습니다. 녀석은 하루 종일 강아지처럼 어머니를 그림자처럼 쫓아다녔습니다. 맨 땅이 드러난 텃밭 네 두둑은 지금 부직포가 하얗게 씌어졌습니다. 엊그제 먼동이 터오기 전 잠자리를 털고 일어났습니다. 어스름이 채 가시지 않은 텃밭에 내려섰습니다. 친환경 거름을 한 두둑에 두 포대씩 뿌렸습니다. 동력용 농기계가 없어 삽으로 네 두둑을 일렀습니다. 십여 년 넘게 가족끼리 해오던 일이었습니다. 해가 갈수록 어머니의 몸이 무거워지셨습니다. 누이는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작은 형은 살인적인 폭염 속에서 고된 도금작업 노동에 닭똥 같은 땀방울을 흘리고 계시겠지요.

다행이 밤중 정오 무렵 10mm의 소나기가 쏟아졌습니다. 그동안 얼마나 가물었던지 물이 흐른 자국이 없었습니다. 일군 흙이 땅에 떨어진 빗물을 남김없이 받아들였습니다. 꼭두새벽부터 토양살충제를 뿌리고 쇠스랑으로 흙을 잘게 부수었습니다. 배추 묘를 이식할 두 두둑에 검을 비닐을 멀칭하고, 네 두둑 모두 부직포를 씌었습니다. 비가 오고난 뒤 무, 순무, 돌산 갓을 파종하고, 농협에 주문한 배추 포트 묘가 도착하면 이식할 일만 남았습니다.

노순이는 세배 째 새끼마저 수놈 도둑고양이한테 잃고, 실의에 빠져 식음을 전폐했습니다. 도통 자기 주인의 정성어린 음식수발도 본체만체 우리집 뒷울안 부엌 샛문 방충망 앞에서 누워 지냈습니다. 기운이 없는 녀석은 감나무 그늘에 길게 몸을 뉘여 하루를 보냈습니다. 노순이가 안쓰러운 지 어머니는 매일 밴댕이구이를 밥상에 올렸습니다. 노순이는 밴댕이 찌끄레기에서 머리만 먹고 억센 뼈는 그대로 남겼습니다. 노순이와 재순이는 어머니께 맛있는 것을 얻어먹은 다음날 어김없이 쥐를 잡아다 우리집 마당에 전시했습니다. 어머니 말에 이르면 녀석들은 “쥐를 잡아 노략질을 하며 놀았습니다.” 마치 어머니의 음식 수발에 고맙다는 보답을 하는 것만 같았습니다.

사상 최악의 폭염 기록이 연일 쏟아졌습니다. 우리집을 배회하는 고양이들도 더위를 피하느라 전전긍긍합니다. 고양이들의 피서법은 제 각각입니다. 길냥이 검은고양이는 텃밭 가장자리의 감나무 그늘이 녀석의 피서지입니다. 해가 중천으로 떠오르면 녀석은 깡패 두목처럼 어슬렁거리며 텃밭 계단을 내려섭니다. 대빈창 해변가는 길 언덕 정상에 자리잡은 우리집은 주문도 최고의 바람꼬지입니다. 재순이는 봉구산산자락 옛길을 따라가는 물받이 수로 노깡속이 녀석이 더위를 피하는 아지트입니다. 콘크리트 수로는 스테인리스 스틸로 덮혔습니다. 아침 산책에 나서며 마을을 떠나는 재순이의 뒷모습을 수없이 보았습니다. 나의 발자국 소리를 알아들은 녀석이 모습은 보이지않고 노깡 속에서 야 ~ 옹! 거리며 아는체를 합니다. 노순이는 텃밭의 땅콩 포기속에 몸을 숨기거나, 물기가 흥건한 뒤울안 수돗가 그늘에 누워 낮잠을 즐깁니다. 어머니 근처를 얼쩡거리다 생선 찌끄레기를 얻을 요량입니다. 조심성 많는 검돌이는 새끼를 돌보느라 해가 떨어져야 나타납니다. 가녀린 몸피만큼이나 녀석은 여린 목소리로 어머니를 올려다보며 야 ~ 옹! 먹을 것이 있냐고 물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