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흥부는 제비의 부러진 다리를 고쳐 주었습니다. 다음해 봄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와 박씨를 흥부에게 떨어뜨렸습니다. 박씨를 심자 커다란 박들이 주렁주렁 달렸습니다. 흥부 가족이 박을 타자 그 속에서 쌀과 돈과 보물이 마구 쏟아져 나왔습니다. 제비가 물어다 준 박씨는 보은 선물이었습니다. 요즘 시대로 말하면 흥부는 엄청난 금액의 로또에 당첨되었습니다.
고전소설 『흥부전』 때문인지 몰라도 한국인들의 정서에 가장 친근한 새가 제비였습니다. 흔히 제비는 삼짇날에 강남에서 돌아와 백로를 전후해 이 땅을 떠나는 여름 철새입니다. 가을이 오면 한 마을의 제비떼는 땅거미가 내릴 즈음 그동안 고마웠다는 인사라도 하듯이 전깃줄에 일제히 앉았습니다. 어릴 적 기억을 되살리면 제비는 서너 개의 알을 낳고 부화시켰습니다. 못자리의 고운 흙을 부리로 물어와 처마 밑에 집을 짓거나, 작년 지은 집을 보수하여 보금자리를 틀었습니다. 어미가 부지런하게 잠자리를 물고와 새끼 입에 넣어 주었습니다. 아이들은 새끼 제비들의 지지배배 소리에 아침잠을 깼습니다.
어느 해 우리 집은 수리를 하면서 현관문위 처마를 투명 판넬로 덧댔습니다. 차츰 햇살이 따가워지자 제비는 마루의 가족사진 액자 옆에 새로 집을 지었습니다. 마루에서 온 가족이 점심을 먹는 주말, 밥상위에 녀석들이 물어 온 지푸라기나 토막 난 잠자리 사체가 떨어지기 일쑤였습니다. 심지어 밥상의 물 탄 짠지 그릇에 제비 똥이 떨어졌습니다. 아버지는 두꺼운 종이상자를 네모나게 잘라 제비 집을 밑에서 받쳐주었습니다. 그 시절 제비는 사람들과 어울려 살던 한 식구였습니다.
그 많던 제비가 강남 갔다 돌아오지 않은지가 어언 30여년이 되었습니다. 이 땅에서 제비는 봄을 알리는 전령사였습니다. 산업화 물결은 금수강산을 제비도 살 수 없을만치 환경을 오염시켰습니다. 생태전문가에 따르면 농촌은 과도한 농약 사용으로 제비의 주식인 곤충이 줄어들었습니다. 도시는 각종 환경호르몬의 영향으로 제비가 번식할 수 없다고 합니다. 제비는 서울에서 2000년에 보호종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하자는 말도 있습니다.
이미지의 새주소 표지판은 주문도라고 표기되었습니다. 강화도의 외딴 섬 주문도 진말의 어느 식당 슬라브 지붕 처마입니다. 할로겐전구 외등은 꺼져있고, 집안은 형광등 불빛이 훤합니다. 지붕 처마아래 LPG가스관이 지나가고 제비 두 마리가 앉았습니다. 벽돌 벽 처마 밑에 제비집이 숨었습니다. 강화도는 콤바인으로 낟알을 수확하고 남은 볏짚을 소먹이로 판매합니다. 외딴 섬은 팔수 없는 볏짚을 가을갈이로 논에 수십년동안 되돌려주었습니다. 전화위복입니다. 땅심이 살아나면서 농약을 치지 않아도 벼가 스스로 병충해를 이겨냈습니다. 고맙게 섬에 제비가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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