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세차(維歲次) 모년(某年) 모월(某月) 모일(某日)에, 얼치기 생태주의자 김씨(金氏)는 두어 자 글로써 토자(兔者)에게 고(告)하노니······.
지난여름 폭염은 역대 최악으로 지독한 살인 더위였습니다. 기상청 통계작성 이후 모든 더위 기록을 갈아 치웠습니다. 전국 평균 폭염일수(일 최고기온 33도 이상) - 31.5일, 연속 최장 폭염일수 - 37일, 열대야(최저기온 25도 이상) 일수 - 17.7일, 일 최고 기온 극값(홍천 41도), 최저 기온값(강릉, 30.9도), 서울의 최저기온이 30.3도, 30.0도를 나타내 기상관측 역사상 처음으로 30도를 넘는 초열대야가 연달아 나타났습니다. 폭염사망자는 48명으로 역대 최다를 기록했습니다.
위 이미지는 폭염이 절정에 달했던 한 달 전의 토진이 모습입니다. 여느 날처럼 아침 산책 반환점인 녀석의 아지트에 닿았습니다. 서향이라 햇살은 아직 산마루를 넘지 못했습니다. 토진이는 공터의 흙을 파헤쳐 배를 깔고 길게 누워 열대야 열기를 식히고 있었습니다. 발자국 소리를 듣고 몸을 길게 늘여 기지개를 켜며 일어난 녀석이 자세를 바로 잡았습니다. 토진이에게 올 여름은 폭염도 대단했지만 진드기의 극성이 더 귀찮았습니다. 어느 날 저녁 산책에서 대빈창 마을의 노년부부를 만났습니다. 바깥양반의 손에 낚시꾼의 뜰채가 들렸습니다.
“토끼 몸에 진드기가 잔뜩 붙었어요. 녀석이 얼마나 괴롭겠어요.”
“그러게요. 이 뜰채로 녀석을 잡아 몸의 진드기를 떼어주려고요.”
측은지심. 사람의 마음은 누구나 같았습니다. 토진이의 핏줄이 도드라진 귀때기와 목덜미에 진드기가 잔뜩 붙었습니다. 녀석과 눈을 마주친 내가 온 몸이 가려울 지경이었습니다. 발걸음을 돌려 부부와 합세했습니다. 놀란 토진이가 숲속으로 도망치는 바람에 생포 작전은 실패했습니다.
이후 녀석의 모습을 볼 수 없었습니다. 아침저녁 산책에서 돌아오면 어머니는 토진이의 안부부터 물었습니다. 차츰 불안한 생각이 짙어 갔습니다. 열흘이 지나고, 보름이 가고, 달포가 되었습니다.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위 이미지가 토진이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이웃집 수확한 고추를 째러 갔던 어머니가 토진이의 주검을 본 노인네의 말을 전했습니다. 상합을 잡으려 갯벌에 들어서던 할머니가 백사장에 뉘여진 토끼의 주검을 보았습니다. 5년6개월 동안 녀석은 백사장에 얼씬거리지 않았습니다. 분명 피서객이 데려 온 반려견의 소행이 틀림없습니다. 어르신들의 말씀에 의하면 고양이는 토끼를 해코지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엽록소가 사라진 추운 계절에도 마른 풀로 목숨을 연명하던 영리한 토진이가 어이없게 희생을 당했습니다. 토진이의 주검을 찾아 부리나케 대빈창 해변으로 달려갔지만 안타깝게 찾을 수 없었습니다. 산책의 동반자를 잃은 슬픔이 허전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만날 때마다 기원했던 하늘이 부여한 생을 토진이는 온전히 마치지 못했습니다.
네 비록 짐승이나 무심(無心)치 아니하면, 후세(後世)에 다시 만나 평생 동거지정(平生同居之情)을 다시 이어, 백년고락(百年苦樂)과 일시 생사(一時生死)를 한 가지로 하기를 바라노라. 오호 애재(嗚呼哀哉)라, 야생으로 되돌아온 토끼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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