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침묵의 뿌리
지은이 : 조세희
펴낸곳 : 열화당
'인간다운 인간들 사이에는 연대감이 존재하기 때문에 개개인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잘못된 일과 불의, 특히 그 앞에서 또는 그가 알고 있는 가운데 저질러지는 범죄 행위들에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이다. 그것들을 저지하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지 않으면 그때 나는 그것들에 대한 책임을 같이 나누어지게 되는 것이다.' 야스퍼스의 말이다. 이 말이 제대로 통용되는 사회를 건설하려면 이 땅은 아직 얼마의 피를 뿌려야만 할까하는 생각에 두려움이 밀려온다.
이 땅의 근대화 과정만큼 고난에 찬 역사를 지닌 국가가 이 지구상에 얼마나 존재할까. 민주주의에 대한 집단적 깨달음이 도래했다는 일말의 안심은 그 배반으로 말미암아 처참하다. 인간적 존엄성 유지라는 고차원적 사회의 도래(?)는 이 땅에서 한낮의 꿈이었는지 모른다. 경제발전이 실제로 이루어지든 말든 그 결과물이 인류가 생존할 수 있는 토대를 파괴하든 말든, 이 땅의 대부분의 천둥벌거숭이들은 이미 물질의 노예가 되었다. 인간다운 삶은 커녕 적하현상으로 부자들이 흘린 찌꺼기나 주워 먹자는 논리도 점차 거짓으로 드러났다. 그 부자들은 넘치려는 물을 더 큰 항아리에 가두었다.
체념과 굴종에 찌든 민중들의 힘없는 헛손질에도 공권력은 예의 국법을 논하며 몽둥이를 미친듯 휘둘러댄다. 세상을 제대로 볼 줄 아는 자에게 빛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책에 나오는 문장을 빌리자면 '악이 광명, 자선, 역사적 필연성, 사회정의를 가장하고 나타나면 우리들이 전통으로 이어받은 세계로부터 나오는 모든 것은 혼란에 빠진다.' 내 책장에는 저자의 연작소설집 『난쏘공』 200쇄 기념 한정본이 꽂혀있다. 난쏘공이 70년대 이 땅의 암울한 산업사회의 질곡을 파헤쳤다면, 사진 - 산문집인 이 책은 80년대 사북이라는 변방을 취재하면서 우리들의 '침묵의 뿌리'에 대한 죄를 추궁(?)한다.
사북사태는 80년 국내 제일의 민간탄광이었던 동원탄좌의 어용노조를 뒤엎으려는 광업 노동자들의 파업 투쟁에 불법 군부세력이 공권력을 동원하면서 발발했다. 사회의식과는 전혀 연관이 없는 유치한, 한 젊은 영혼은 이 탄좌와 인연을 맺을 뻔 했다. 85년 초겨울, 자신도 알지 못하는 세상에 대한 혐오와 환멸로 나는 턱없이 막장인생을 준비했다. 방학을 맞아 고향인 도계에 내려 온 후배를 찾아 대한석탄공사의 문을 두드렸으나 껄렁한 나의 행색 때문인지 퇴짜를 맞았다. 청량리 역에 내린 나의 눈에 뜨인 구인광고가 바로 사북 동원탄좌 광부모집공고였다. 일단 다음날 아침 사북행 열차에 타기로 언약했다. 그날 저녁 인천 십정동 도금공장의 작은 형을 찾았다. 그때 형은 신열에 들뜬 몸으로 나를 붙잡았다. 눈물이 고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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