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말이 없으면 닭을 타고 가지

대빈창 2018. 11. 9. 07:00

 

 

책이름 : 말이 없으면 닭을 타고 가지

엮어옮긴이 : 이강옥

펴낸곳 : 학고재

 

책은 이강옥 영남대 교수가 조선시대 초·중기의 잡록집이나 야담집에서 선인들의 삶의 지혜가 담긴 258편의 짤막한 일화(逸話)를 엮고 옮겼다. 책 말미에 「출전 해제」 31권의 목록이 실렸는데, 내가 그동안 독서 여정에서 귀동냥으로나마 들은 책은 8권뿐이었다.

 

박종채(朴宗采, 1780~1835):과정록(過庭錄) / 성현(成俔, 1439~1504):용재총화(慵齋叢話), 필원잡기(筆苑雜記) / 어숙권(魚叔權, 미상):패관잡기(稗官雜記) / 이규상(李奎象, 1727~1799):병세재언록(幷世才彦錄) / 노명흠(盧命欽, 1713~1775):동패락송(東稗洛誦) / 김안로(金安老, 1481~1537):용천담적기(龍泉談寂記) / 이제신(李濟臣, 1536~1583):청강선생후청쇄어(淸江先生鯸鯖瑣語)

 

일화(逸話)는 ‘실제로 겪은 경험이나 실제로 있었던 현상, 그리고 실존했던 사람의 특별한 부분에 대한 이야기’(6쪽)를 일컫는다. 책은 모두 9장으로 구성되었다. 세상을 올곧게 살아가는 힘겨움,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 사사로움에 구애받지 않는 인격자, 당대 규범을 무시하는 부정적인 인물, 기존 질서나 도덕률에서 잠시 일탈, 시대 문제에 민감한 사람, 애틋함과 기구한 이별, 기이한 현상, 빛나는 삶의 한 부분을 말로 포착한 이야기로 꾸몄다.

술에 대한 에피소드로 「가죽신 술잔」, 「술 주정꾼의 마음을 다스린 박지원」, 「큰 잔으로 석 잔」, 「문성과 주성의 정기」, 「매일 취하는 강서」가 있으나, 나의 눈길은 「시의 풍경과 일치한 권필의 임종」에 오래 머물렀다. 시인 권필(1569 ~ 1612)은 광해군 4년(1612)에 척족들의 방종을 풍자한 「궁류시(宮柳詩)」로 옥에 갇혔다가 귀양길에 오르게 되었다. 시인은 심문으로 인한 상처가 덧나 누웠다가 큰 그릇으로 술 한 잔을 마시고 눈을 감았다. 시류에 편승하길 거부한 강직한 시인다운 절명이었다. 권필은 강화도에서 유생을 가르치며 시를 읊었다. 과거에 뜻이 없어 시를 지으며 가난한 삶을 살았다. 강화도 송해면 하도리 오류내에 있는〈석주권필유허비〉는 나라에 변고가 있을 때마다 땀을 바가지로 흘렸다.

표제 「말이 없으면 닭을 타고 가지」는 권별(權鼈, 1589 ~ ? )이 지은 『해동잡록(海東雜錄)』에 실린 이야기다. 우스갯소리를 잘하는 김씨가 친구 집을 찾아 술상을 대접 받았으나, 안주가 채소뿐이었다. 그때 마당에서 모이를 쪼는 닭을 보고, 자기가 타고 온 말을 잡아 안주를 하자고 했다. 주인이 “말을 잡으면 무엇을 타고 돌아갈 것인가?”라고 묻자, 김씨는 “닭을 타고 가면 되지”라고 대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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