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길은 어느새 광화문

대빈창 2018. 11. 26. 07:00

 

 

책이름 : 길은 어느새 광화문

지은이 :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펴낸곳 : 푸른사상

 

2016년 여름 터진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은 찬바람이 불면서 정권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항쟁’을 불러왔다. 전국 1,500개가 넘는 시민단체는 촛불항쟁 연대체인 ‘박근혜정권퇴진비상국민행동’을 꾸렸다. 2016년 10월 29일, 1차 촛불집회가 열렸다. 2017년 4월 29일, 23차 촛불집회까지 연인원 1천7백만명이 모였다. 촛불은 서울 광화문 광장과 경향 각지의 대도시는 물론 전국으로 번져 나갔다. 정의와 평화의 상징이었던 촛불은 2017년 3월 10일 헌법재판소의 ‘박근혜 파면’을 이끌어냈다. 3월 31일 박근혜는 5년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권력을 잡은 지 4년만에 구속되었다. 촛불항쟁은 독일 에버트 재단으로부터 인권상을 받았다.

촛불항쟁에 시인들은 시민과 함께 어깨를 겨누었다. 『길은 어느새 광화문』은 촛불혁명 1주기를 맞아 한국작가회의 자유실천위원회 소속 시인 52명이 꾸린 기념 시집이다. 52 시편과 시인 임성용의 산문 「꺼지지 않는 촛불로」가 실렸다. 눈에 익은 시인을 찾기가 힘들었다. 내가 아는 시인은 함민복을 비롯한 고작 5명이었다. 마지막은 50여 편의 시에서 나의 눈길을 가장 오래 사로잡은 김경훈의 「죽은 박정희가 말하기를」(18 ~ 19쪽)의 전문이다.

 

장하다 내 딸아

내가 십팔 년 동안 쌓아놓은 그 모든 걸

너는 단 4년 만에 다 까먹었구나

 

나는 그렇게 총 맞아 죽었지만

내가 뿌린 씨앗은 최소한 백 년은 갈 줄 알았는데

반신반인(半神半人)으로 영원히 추앙받을 줄 알았는데

 

너는 5년을 못 버티고

국민들 촛불에 쫓겨나면서 나마저 지우는구나

참 장하다 이 칠푼이 같은 년아

 

이제 이 박정희의 이름이 사라지는구나

이제 이 다카기 마사오의 우상이 사라지는구나

이제 이 십팔 년 박통의 신화가 사라지는구나

 

참으로 장하고 장하다 내 딸아

너는 본의 아니게 국민 대통합을 이루고

이제 내 곁으로 올 때가 되었구나

 

나는 여기서 시바스리갈 마시다가 김재규 총 맞는 일이 반복인데

너는 여기 와서 매일 뜨거운 화탕지옥(火湯地獄)에서 살겠구나

너나 나나 살아서나 죽어서나 뜨거운 맛을 보는구나

 

이 칠푼이 년아 어서 오거라

올 때는 김기춘이 놈도 데리고 와라

우리 추종자들도 다 데리고 오너라

 

이제 우리의 세상은 끝났다

이제 우리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 우리는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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