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쏘주 한 잔 합시다
지은이 : 유용주
펴낸곳 : 큰나
마음에 담았던 책은 우연이든 필연이든 언젠가는 만나게 되었다. 시인의 책을 네 권 째 잡았다. 읍에 나갔다 군립도서관에서 빌렸다. 시집은 『가장 가벼운 짐』(창비, 1993), 『크나큰 침묵』(솔, 1996)을. 산문집은 MBC 프로그램 〈느낌표〉에 선정된 베스트셀러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솔, 2000)에 이어 두 번째였다. 『쏘주 한 잔 합시다』는 출판사가 상표등록을 미리 하고, 작가를 찾아 집필을 맡겼다고 한다. 출판사는 가장 적절한 작가를 찾은 것이 틀림없다. “학력 별무에 막노동으로 밑바닥에서부터 문학을 시작한 나에게 아닌 게 아니라 잘 어울리는 제목”이라며 시인은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시인의 최종학력은 중졸도 아닌 중학 1년 중퇴가 전부였다. 중국집 배달원, 구두닦이, 공장 노동자, 벽돌공, 우유 배달원, 금은방 종업원, 노가다 잡부 등. 시인의 신산스런 삶이 녹아들은 글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들었다. 나는 시인을 소설가 한창훈의 글을 통해 뒤늦게 만났다. 밑바닥 인생에서 건져올려, 삶의 치열함이 드러난 담박한 문체에 매료되었다.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를 잡고 시인의 두 번째 산문집을 찾았다. 2005년에 나온 책은 품절이라는 딱지가 붙었다. 출간된 지 15년 만에 시인의 맛깔스런 문체를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책은 4부로 구성되었다. 1부의 첫 글 「오래된 사랑」은 입영을 연기하고 찾은 고향에서 만난 버스 차장 후배와의 하룻밤 풋사랑을 그렸다. 공간적 배경은 안개가 자욱한 무진읍(김승옥의 『무진기행』을 떠올렸다)이지만, 시인의 고향인 장수읍이 분명했다. 3편의 글은 이정록의 시집 『제비꽃 여인숙』, 도법스님과 생명평화탁발순례를 떠나는 이원규 시인, 이면우의 『그 저녁은 두 번 오지 않는다』를 통해 삶과 문학의 관계를 천착했다.
2부 「아름다운 것은 독한 벱이며」는 부제 ‘17일간의 승선 일기’가 말해주듯 시인이 술(?)로 ‘문단의 죽음의 조“라 불려지는 시인 박남준, 안상학과 소설가 한창훈과 함께 현대상선 컨테이너 하이웨이호로 부산항에서 남지나해, 인도양을 거쳐 아랍에미리트 두바이까지 함께한 항해(航海) 일기였다. 품절되어 손에 넣을 수 없었던 『깊고 푸른 바다를 보았지』의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3부 「그 숲길에 관한 짧은 기억·2」는 『그러나 나는 살아가리라』의 첫 글과 녹색연합이 발행하는 생태환경월간지 〈작은것이아름답다〉가 엮은 산문집 『그 숲길에 관한 짧은 기억』의 후속편이었다. 4부는 짧은 산문 10편의 글을 모았다. 문단 후배를 살뜰히 챙기신 명천 이문구 선생, 떡 다라이를 버스에 두고 내린 어머니의 황망함, 화순 운주사와 광주 5·18묘지의 가족 남도여행, 전업주부의 고단한 일상, 목수 스승 김인권, 이성복의 시를 만났던 쓰라린 기억뿐인 젊은 한때, 「白鶴峯1」과 시인 김지하 껴안기, 『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의 작가 찰스 부코우스키에 보내는 편지, 중국 곡예단의 서커스를 보고 한수산 장편소설 『浮草』를 떠올렸다.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비 한 방울 구경하기 힘든 사막에서 이 화려한 도시를 건설한 아랍에미리트처럼 극한의 자연환경을 극복하고 견디는 지혜를 배워야 할 것이다.”(141쪽)라는 구절 때문이었다. 시인은 두바이를 ‘은하철도999의 가상도시’처럼 보았다. 시인도 어쩔 수없이 개발지상주의 국가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나에게 두바이는 생물이 살아가는 유일한 별 지구에서 호모사피엔스의 멸종을 암시하는 상징처럼 보였다. 촛불은 꺼지기 전 가장 환한 빛을 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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