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잡초는 없다

대빈창 2019. 1. 14. 07:00

 

책이름 : 잡초는 없다

지은이 : 윤구병

펴낸곳 : 보리

 

사람과 책의 인연도 따로 있는지 모르겠다. 출간된 지 20여년 만에 책씻이를 했다. 책이 나오기 전 90년대 초. 나는 변산공동체와 인연이 닿을 뻔했다. 지금 기억을 되살려보니 윤구병 교수가 소박한 생활공동체를 변산에 꾸리면서 함께 할 동지들을 규합(?)하는 시기였다. 그 시절 나는 공장노동자로 다리가 부러져 잠시 시골집에 몸을 의탁하며 후배들의 옥바라지를 하고 있었다. 그들은 사노맹 사건에 연루되어 국보법으로 구속되었다. 청주교도소에 수감된 후배 면회를 갔다가 윤구병 선생의 제자인 철학도와 시간을 함께 했다. 마땅한 직업이 없는 룸펜이었던 나에게 그녀는 변산공동체 얘기를 꺼냈다. 경직(?)된 프롤레타리아에게 생태주의자의 삶이 귀에 들어올 리 없었다.

책은 그시절 옥바라지를 했던 함양 덕유산자락 외딴집의 후배 집에서 처음 만났다. 철학자는 미래가 보장된 교수직을 때려치웠다. 전북 부안군 변산면 운산리에 소박한 공동체를 꾸린 지 3년여 만에 나온 책이었다. 철학교수가 아닌 농사꾼으로서 처음 선 뵌 책이었다. 농부철학자가 변산으로 귀농한 것은 산살림, 들살림, 갯살림이 가능한 최적의 입지조건 때문이었다. 전북 변산으로 내려가 삽자루를 움켜 쥔 철학교수를 보고 다들 미쳤다고 말했다. 3년을 버티면 손에 장을 지지겠다는 험한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손마디는 굵어지고 얼굴은 새카맣게 탔지만 그는 여전히 농사를 짓고 있었다. 너른 들판 귀퉁이에 자리한 변산공동체는 이웃과 더불어 농사를 짓고, 아이들에게 자연 속에서 더불어 사는 진정한 삶을 가르쳤다.

변산공동체는 유기농으로 농사를 지으며 다섯 가지 원칙을 지켰다. 5無농법으로 제초제, 농약, 화학비료를 쓰지 않았다. 거기다 비닐멀칭을 안하고 사서 쓰는 퇴비를 사갈시했다. 농부철학자는 이 땅에서 기초 생활공동체의 어려움을 이겨내고 있었다. 아무리 힘들어도 현실을 꿋꿋이 버텨냈다. “영농비가 따로 필요 없는 농사, 생활비가 최소한으로 드는 생활양식, 아이들에게 삶에 필요한 정보를 자연 속에서 실천을 통하여 얻게 하는 교육만이 현실에서 살아남는 길이었다.”(238쪽)

책을 읽어나가다 나의 눈길은 여기서 한참을 머물렀다. 생태서적을 읽고 리뷰를 긁적이다 곧잘 인용하는 구절이었다.

“할머니 콩은 언제 심어요?”

농부철학자가 시골살이를 하면서 콩 심는 날을 잡으려 동네 할머니께 물었다. 대답이 전혀 뜻밖이었다.

“으응, 올콩은 감꽃 필 때 심고, 메주콩은 감꽃이 질 때 심는 거여.”

그렇다. 할머니 말씀이 정답이었다. 삼천리금수강산은 지역마다 토양, 기후, 온·습도, 비나 눈, 바람길이 다 다른데 어떻게 고정된 날짜가 정해질 수 있을까. 같은 지역의 날씨도 해마다 천변만화인 것을. 우리집은 주문도 바람꼬지였다. 해마다 같은 날 항상 똑 같은 바람이 분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소리였다. 첫서리와 늦서리가 내리는 날도 해마다 다르지 않은가. 할머니의 지혜는 오랜 세월을 두고 쌓은 관찰과 경험의 산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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