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아지가 머라고 중얼중얼 거리네.”
어머니 말씀이십니다. 느리가 개장에서 밖으로 끌어 낸 헌옷을 다시 창고안 개장에 넣어주려고 집어 들자, 느리가 앞발로 헌옷을 누르며 끙끙 거렸습니다. 느리의 헌옷에 대한 집착은 집요함을 넘어 병적입니다. 강아지가 우리집에 도착한 날, 느리의 집을 어머니 방에 군불 때는 아궁이가 설치된 봉당으로 정했습니다. 먼 길을 종이박스에 담겨 이동한 강아지는 폐쇄 공간 트라우마에 시달렸는지 모르겠습니다. 녀석은 첫날 밤새 잠을 못 이루고 끙끙거렸습니다. 어린 강아지가 안쓰러웠던 어머니는 당신의 방에 예의 헌옷을 깔고 강아지와 같이 밤낮을 지냈습니다. 이웃 형수들의 쓴소리에 느리의 집은 창고 한 칸으로 옮겨졌습니다.
창고 안 개장에 느리가 어머니 방에서 보름동안 묵었을 때 깔고 앉았던 헌옷을 다시 깔아주었습니다. 떨어져나간 출입문을 대신하여 문설주에 못을 박고, 투명비닐로 가림막을 쳤습니다. 대견하게 녀석은 들썩하며 비닐을 머리로 치켜 올리며 자기집을 드나들었습니다. 하지만 느리는 천상 장난심한 진돗개 새끼였습니다. 새집에 적응하자 녀석은 늘어진 비닐이 귀찮은지 머리가 닿는 곳까지 입으로 물어뜯었습니다. 이미지에서 뜯긴 비닐이 바람에 펄럭입니다. 헌옷은 느리의 신주단지였습니다. 북향의 집은 아침해가 뒤늦게 봉구산을 넘어 햇살을 뿌립니다. 느리는 개장의 헌옷을 입으로 끌어내 부직포가 찢긴 마늘밭에 깔거나, 창고앞 시멘트 포장공간에 둥그렇게 말고 그 위에 앉았습니다. 손바닥만한 햇살이 비추기 시작하면 녀석은 온몸을 늘여 해바라기를 합니다. 입구에 늘여진 비닐이 손상될까 긴 막대기로 녀석의 헌옷을 다시 개장 안으로 넣어 주었습니다. 우리 모자(母子)와 강아지는 헌옷을 사이에 두고 매일 실랑이를 벌였습니다. 느리는 하루종일 헌옷을 깔고 앉아 움직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모자는 두 손을 들었습니다. 해가 떨어지고 어둠의 장막이 짙어져서 장대로 헌옷을 개장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다행히 녀석은 개장에서 잠을 청했습니다.
성탄절 전날, 뭍에 나가며 느리를 아궁이 봉당에 줄을 길게 늘여 매었습니다. 동장군이 들이닥쳐 다리가 불편하신 어머니가 계단을 오르내리며 느리의 밥과 물을 챙기는 일이 번거롭지 그지 없었습니다. 느리가 겨울 한 철 보일러 관수가 통과하는 봉당에서 따뜻하게 나길 바라는 배려였습니다. 이틀만에 집에 들어오니, 느리가 창고앞에 헌옷을 깔고 둥그렇게 몸을 말고 있었습니다. 어머니 말에 의하면 느리는 한시도 가만있지 못하고 안절부절했다고 합니다. 해가 떨어지면 어머니는 느리의 엉덩이를 밀어 강제로 봉당에 들이고 미닫이 문을 닫았습니다. 느리의 트라우마 증상은 생각보다 훨씬 심했습니다. 섬에 들어오던 날 오후, 열심히 우왕좌왕하던 느리의 목줄이 끌러졌습니다. 마실 다녀오신 어머니가 창고 앞 텃밭의 피마자 그루터기에 목줄이 감겨 옴짝달짝 못하는 느리를 발견했습니다. 어머니 말씀이십니다.
“강아지가 순한데 고집이 너무 쎄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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