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씨가 추워지고, 해가 짧아지면 대빈창 해변으로 향하는 나의 발길은 뜸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평일의 산책은 건강관리실 런닝머신으로 대신합니다. 날이 풀린 휴일, 봉구산을 넘어 온 아침 햇살이 마을 구석구석 퍼지는 시각, 오랜만에 대빈창 해변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지구온난화로 이상기후가 일상화된 올 겨울의 날씨도 도통 종잡을 수 없습니다. 밝고 맑은 햇살에 이끌려 길을 나섰지만 바닷바람은 볼이 얼얼할 정도로 매웠습니다. 미세먼지로 뿌연 대기 탓에 분지도의 몰골이 초췌해보였습니다.
바위 절벽에 엄나무가 자리 잡은 대빈창 산책의 반환점에 못 보던 구조물이 들어섰습니다. 야생으로 돌아왔던 애완토끼 토진이의 안마당이었던 삼태기 형상의 공터에서 가파른 산날맹이까지 나무테크 계단이 놓였습니다. 대빈창 해변에 발을 담근 봉구산 자락의 경사면은 거의 직각에 가까웠습니다. 계단 중간 쉴참이 전망대였습니다. 바위 틈새에 자리 잡은 날카로운 가시가 돋은 엄나무가 발아래 있었습니다. 분지도가 내려다보이고, 내가 걸어온 해변 제방길이 현기증이 일 정도로 까마득하게 보였습니다. 발걸음을 산정까지 내딛었습니다. 반대편 경사면은 그대로 잡목숲이었습니다. 나무계단이 길을 낸 자리가 절묘했습니다. 계단 안쪽은 활엽수인 아까시나무와 칡덩굴 군락이고, 바깥은 침엽수 해송이 무리지었습니다.
연두빛이 나무에 오르는 계절이 돌아오면 쉴참에 주저앉아 수목이 내뿜는 숨결을 더 가까이 할 수 있겠지요. 벼랑 틈새에 자리 잡은 세월 먹은 두 그루의 소나무를 쉴참 바닥에 구멍을 뚫고 살려냈습니다. 고마운 마음씨입니다. 새해 나의 산책로가 계단 길이만큼 더 길어졌습니다. 내가 걸어 온 수평의 제방길을 내려다보는 바위벼랑을 오르는 나무계단의 수직길. 현재 내가 위치한 나의 인생길과 닮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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