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토종 씨앗의 역습

대빈창 2019. 3. 25. 07:00

 

 

책이름 : 토종 씨앗의 역습

지은이 : 김석기

펴낸곳 : 들녘

 

자연농법으로 미래를 꿈꾼 이와사와 노부오의 『세상을 바꾸는 기적의 논』(살림, 2012)의 옮긴이로서 저자를 처음 만났다. 이어 토종곡식 씨앗에 대한 기록으로 백승우와 공저인 『토종 곡식』(들녘, 2012)이 두 번째였다. 『토종 씨앗의 역습』(들녘, 2017)은 “토종 씨앗은 농업생물 다양성의 교두보”라고 말했다. 농사에 관심이 많아 텃밭을 운영하는 평범한 도시농부였던 저자는 자연스럽게 전통 농법에 관심을 가지게 되면서 옛사람들의 농사법을 연구하게 되었다. 이어 토종 유전자원을 채집·보존하는 활동을 이어갔다.

토종 씨앗이란 “농업생태계에서 농민에 의하여 대대로 사양, 재배 또는 이용되고 선발되어 내려와 한국의 기후 풍토에 잘 적응된 식물”(17쪽)이다. 저자는 토종의 보존은 생활 속에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물관 전시실의 유물이 아닌 농민에 의해 땅위에 뿌려져 자라고 밥상에 올리는 생활재였다. 토종 씨앗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새로운 자연환경에 적응하며 농부와 함께 자신의 유전자를 변화시키며 살아왔다.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 토종 씨앗도 변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책을 읽어나가다 강화도에서 저자가 만난 농부와 씨앗에 정이 갔다. 불은의 최시종 할머니는 한해 가장 잘된 벼의 이삭을 따로 따서 묶어 걸어놓고 보셨다. 토종 씨앗의 보전 비결을 “씨앗은 아들만큼 위하는 거야!”라는 한마디로 말씀하셨다. 강화 특산물 순무는 두 가지가 재배되었다. 삼국시대부터 흰색 순무가 재배되었고, 1890년대 영국의 군사교관들이 가져온 보랏빛 순무였다. 지중해 연안이 원산지인 순무는 바다로 둘러싸인 강화도가 재배 적지였다. 교동도의 분홍감자는 쪄놓으면 분이 허옇게 일어나 파슬파슬 부숴졌다. 가공용이 아닌 찐감자용이었다.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봉구산자락의 우리집 텃밭은 대략 40여평이나 되었다. 설치미술에 비견될만한 어머니의 사이짓기·섞어짓기·이어짓기의 텃밭농사는 말그대로 예술이었다. 읍내 농약사에서 구입한 청양고추·양파·배추묘와 무씨를 제외하고 어머니는 텃밭 작물의 씨앗을 받아 농사를 지셨다. 순무는 농업기술센터의 선별된 두 가지 품종을 분양받았다. 강화 마늘의 대명사인 망월 마늘과 땅콩은 주문도 재래종이다. 완두콩, 강낭콩, 참깨, 들깨, 대파, 쪽파, 서리태, 시금치, 도라지는 김포 텃밭의 후손이다. 토종 씨앗은 원래 사고파는 물건이 아니다. 한 마을에서 잘 여문 씨앗은 서로 나누어 심었다. 씨앗은 일종의 공유재였다.

‘신품종 통일벼를 보급하는 초창기에는 통일벼 이외의 다른 품종의 토종 벼로 못자리를 만들면 관련기관의 관리들이 나와 못자리를 밟아 망쳐 버리는 일도 흔했다고 한다.’(10쪽) 군사독재 정권은 획일성이 지배하는 경직된 사회였다. 어릴 적 얻어들은 이야기다. 드넓은 김포 들녘에서 모내기가 한창이었다. 일꾼들이 이른 아침부터 손모를 내고 있는데, 농촌지도소 공무원이 힘들게 낸 어린모를 발로 짓밟으며 따라오고 있었다. 참다참다 꼭지가 돈 논 주인이 삽자루로 어깨를 내리쳤다. 군홧발 정권 시절의 눈뜨고 못 볼 살풍경이었다. 나의 중학시절. 우리집 벼베기가 있는 날이었다. 어머니와 작은형과 나는 낫을 손에 쥐고 논으로 나섰다. 탈곡이랄 것도 없었다. 조심스럽게 손아귀에 쥔 볏단을 넓게 펼쳐진 가빠 위의 드럼통에 내려치면 벼알이 짚에서 쉽게 떨어졌다. 얼마나 벼알의 탈립이 심한지 조심스럽게 낫질을 해도 논바닥에 알곡이 우수수 쏟아졌다. 통일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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