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열두 발자국

대빈창 2019. 4. 4. 07:00

 

 

책이름 : 열두 발자국

지은이 : 정재승

펴낸곳 : 어크로스

 

나는 TV를 백안시한다. 저녁 밥상머리에서 어머니가 켜놓은 TV를 곁눈질로 보거나, 남의 집을 방문했을 때, 만남의 장소에서, 사람 주변에서 존재를 드러내는 녀석에게 어쩔 수없이 시선이 닿았다. 그렇다. 나는 책이 아닌 거기서 저자를 처음 보았을 것이다. 국내여행을 하면서 박학다식한 출연진들이 끝없이 수다를 쏟아내는 예능 프로그램 〈알쓸신잡〉이었다. 노무현재단 이사장 유시민과 소설가 김영하는 낯익었다. 하지만 내게 뇌과학자인 KIST 교수 정재승은 낯설었다. 더군다나 출판사 《어크로스》도 낯설기는 마찬가지였다. 시의적절한 인문 교양서로 독자에게 어필하는 소규모 출판사였다.

뇌과학자는 탁월한 대중강연가였다. 손에 들지 않았지만 낯익은 2001년에 나와 70만부가 팔린 『정재승의 과학콘서트』는 한국 과학자가 쓴 교양 과학책의 시발점이었다. 『열 두 발자국』은 17년 만에 나온 단독 저작으로 지난 10여 년간의 강연 중 가장 많은 호응을 받았던 12개의 강연을 선별하여 다시 집필했다. 1부는 의사결정 / 결정장애 / 결핍 / 놀이 / 미신(迷信, superstition) 이라는 주제 강연으로 뇌과학을 통해 인간이 저지르는 행동의 원인과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 조언, 2부는 인공지능, 4차산업혁명,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블록체인(blockchane) 등 급변하는 시대상을 강의했다.

21세기 신경과학자들은 창의적인 사람들이 기발한 발상을 했을 때 ‘기능적 자기 공명 영상(fMRI)'으로 뇌를 찍었다. 창의적 아이디어가 돌출되는 순간 평소 신경 신호를 주고받지 않던, 굉장히 멀리 떨어져 있는 뇌의 영역들이 서로 신호를 주고받는 현상을 발견했다. 창의적 인재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스티브 잡스는 대학시절 아름다운 손글씨에 매혹되었다. 이 강렬한 경험이 훗날 자신의 삶에 영향을 미쳤다고 고백했다. 그는 디지털 혁명의 전위였다. 손글씨와 디지털은 뇌의 영역에서 아주 멀리 떨어져있지 않았을까.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는 호모 사피엔스가 서투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우리의 뇌는 약 3만년 전의 원시적인 상황에서 생존과 짝짓기에 필요한 선택을 하기 적절한 정도로 진화해“(38쪽)왔기 때문이다. 책은 1.4킬로그램의 작은 우주인 뇌라는 관점에서 보편적인 인간을 다루었다. 양자역학의 창시자인 물리학자 닐스 보어(Niels Bohr)는 말했다. ”하나의 혁명적인 아이디어가 세상에 퍼지고 결국 그것이 받아들여지는 것은 기성세대가 설득되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세상에서 사라지고 젊은 세대가 주요 세대로 등장하면서 바뀌는 것뿐이다.“(288 ~ 28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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