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안개의 나라
지은이 : 김광규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1시집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1979) / 2시집 『아니다 그렇지 않다』(1983) / 3시집 『크낙산의 마음』(1986) / 4시집 『좀팽이처럼』(1988) / 5시집 『아니리』(1990) / 6시집 『물길』(1994) / 7시집 『가진 것 하나도 없지만』(1998) / 8시집 『처음 만나던 때』(2003) / 9시집 『시간의 부드러운 손』(2007) / 10시집 『하루 또 하루』(2011) / 11시집 『오른손이 아픈 날』(2016)
김광규 시인은 2018년 희수(喜壽)를 맞았다. 1975년 계간 〈문학과지성〉으로 문단에 나와 총 11권의 시집을 펴냈다. 11권의 시집은 모두 〈문학과지성 시인선〉으로 출간되었다. 시력 40년을 결산하는 시선집 『안개의 나라』는 11편의 시집에서 각각 17편에서 28편까지, 시인이 자선(自選)한 224편이 실렸다. 해설은 문학평론가 김인환의 「지상의 거처」였다. 마무리는 「시인 연보」로 맺었다.
나는 시인을 번역가로 먼저 만났다.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시선집 『살아남은 자의 슬픔』(한마당, 1985)을 통해서였다. 시인은 자신의 시를 이렇게 말했다. “독일 시인 슈테판 게오르게의 비의적 서정시에서 엄격한 언어의 형식을 배우고, 프란츠 카프카의 부조리한 소설에서 난해한 내용과는 달리 즉물적이고 정확한 문장을 사용한 데서 서술의 명징성을 배웠던 것 같다.”고. 시인은 평범한 일상 속의 소시민성을 시로 승화시켜 한국시에 ‘일상시’의 새로운 지평을 개척했다고 평가받았다. 일상에서 길어올린 담백한 언어로 쓰여진 시는 인간과 사회에 대한 심오한 사유가 담겨 폭넒은 독자층을 형성했다. 나는 시선집에서 당대 현실과 역사적 상황에 대한 비판, 소시민적 삶의 반성, 정치적 억압과 허위에 대한 저항과 자유 의지를 진솔하게 다룬 70 - 80년대 시들이 마음에 와 닿았다.
두툼한 양장본의 표지 장정이 눈길을 끌었다. 완강한 콘크리트 옹벽이나 희뿌연 안개가 점령한 대지처럼 보이는 표지에 「안개의 나라」가 시인의 친필로 쓰였다. 마지막은 이 땅의 불행한 현대사 - 군홧발 시대의 암울한 풍경을 은유한 표제시 「안개의 나라」(48쪽)의 전문이다.
언제나 안개가 짙은 / 안개의 나라에는 /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 어떤 일이 일어나도 / 안개 때문에 / 아무것도 보이지 않으므로 / 안개 속에 사노라면 / 안개에 익숙해져 / 아무것도 보려고 하지 않는다 / 안개의 나라에서는 그러므로 / 보려고 하지 말고 / 들어야 한다 / 듣지 않으면 살 수 없으므로 / 귀는 자꾸 커진다 / 하얀 안개의 귀를 가진 / 토끼 같은 사람들이 / 안개의 나라에 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