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국가란 무엇인가

대빈창 2019. 6. 7. 05:51

 

 

책이름 : 국가란 무엇인가

지은이 : 유시민

펴낸곳 : 돌베개

 

제주 4·3항쟁, 4·19혁명, 유신독재 민주화투쟁, 5·18광주민중항쟁, 1987. 6. 국민대항쟁, 2016-2017년 겨울 촛불집회. ‘역사는 귀한 것을 거저 주는 법이 없다. 남들이 민주주의를 세우기 위해 치렀던 희생과 비용을 우리는 민주공화국을 세운 후 오랜 세월 동안 치러야 했다.’(313~314쪽) 맺음말 「훌륭한 국가를 생각한다」에서 고난에 찬 현대사를 써 온 조국이 서럽고 애달프게 다가 온 구절이었다. 용산참사, 4대강 사업, 가습기 살균제 사건,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 백남기 농민 물대포 사망, 최순실 국정농단 등. 이명박근혜 9년의 참담한 현실을 버텨오면서 나는 ‘도대체 대한민국은 국가인가 괴물인가?’라는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한 겨울 광화문 광장의 촛불을 치켜 든 수천만명 시민의 한 사람이 되었다.

현 노무현재단 이사장 유시민에 대한 시민의 호감도는 아주 높다. 2018년 말 코리아리서치센터가 조사한 차기 대선후보 선호도에서 1위를 차지했다. 개혁국민정당 소속으로 2003년 재보궐선거에 당선되어 국회에 처음 등단하며 ‘백바지’를 입고 나타나, ‘싸가지 진보’라는 구설수에 휘말렸다. 정치판을 떠난 그는 JTBC ‘썰전’의 정치평론가, tvN ‘알쓸신잡’의 박학다식한 지식인, 수많은 베스트셀러를 내놓은 작가, 구독자 수 60여만 명을 자랑하는 ‘유시민의 알릴레오’의 유튜버로서 절정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대중적 인지도가 가장 높은 ‘정치판을 떠난 정치인’(?)인지 모르겠다. 격세지감이었다.

내가 처음 기억하는 유시민은 글 잘 쓰는 서울대 운동권 학생이었다. 서울대 경제학과 학생이었던 그는 1985년 ‘서울대 프락치 사건’의 주모자로 구속되었다. 인권변호사 이돈명의 권유로  재판부에 제출한 「항소이유서」는 명문장으로 오랜 세월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처음 읽은 유시민의 글은 『무크지 창비』에 실린 중편소설 「달」로 기억된다. 단행본은 드레퓌스 사건이 인상적이었던 『거꾸로 읽는 세계사』(푸른나무, 1991)를 문래동 마찌꼬바 철공소 견습공시절, 가리봉동 벌통방에서 잡았다.

3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외딴섬의 자칭 얼치기 생태주의자로 개정 신판 『국가란 무엇인가』를 펴들었다. 동서고금 철학자와 이론가들의 ‘국가’에 대한 다양한 견해를 알기 쉽게 풀어내는 저자의 필력에 고개를 주억거릴 수밖에 없었다. 네 가지 국가론 - 목적론적 국가론의 플라톤, 국가주의 국가론의 홉스, 자유주의 국가론의 로크와 밀, 마르크스주의 국가론을 하나씩 짚어가면서 독자의 정확한 이해를 도왔다.

이 땅의 계급적 투표성향을 보면 이해할 수 없는 결과에 핏대를 세우거나 분노를 터뜨릴 수밖에 없다. 부유한 유한계급이 보수정당을 지지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었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들이 진보정당을 사갈시하며 보수정당을 미는 현상에 아연해하지 않을 수 없다. 원인은 사회적 양극화 현상 때문이었다. 풍요로운 사람들은 현재 상황에 불만을 느낄 수가 없으므로 보수적이고, 가난한 사람들은 내일을 생각할 여유가 없어서 보수적인 것이다. 생활환경의 변화에 대한 압력을 느끼고, 이를 학습하고 사유할 여유가 있는 중산층이 진보주의 성향을 보이는 이유였다. 『열린 사회와 그 적들』을 쓴 오스트리아 출신의 영국 철학자 칼 포퍼(Karl popper, 1902 - 1994)는 말했다.

 

"만약 누군가가 20대에 마르크스주의자가 아니라면 그는 심장이 없는 사람이다. 만약 누군가가 20대가 지나서도 마르크스주의자라면 그는 뇌가 없는 자다."

 

‘진보와 보수는 사유습성과 생활방식, 제도의 변화에 대응하는 정신적인 태도를 가리킨다.’(207쪽) 진보는 변화를 받아들이고 실천하려는, 보수는 변화를 거부하는 태도를 말한다. 사람들이 나이가 들수록 점점 보수적으로 변하는 것은 불가피했다. 진보주의에 매혹을 느꼈던 젊은이가 나이가 들면서 보수주의로 회귀하는 것은 인간의 생물학적 운명이었다. 나의 정치성향은 지금까지 생물학적 변화를 거부한 셈이었다. 대선은 민중후보 백기완, 권영길, 심상정 등 한 우물을 팠다. 총선은 이 땅의 자생 사회주의자들이 제도권 선거에 첫발을 들여놓은 92년 이후 민중당, 진보신당, 민주노동당, 통합진보당, 정의당으로 이어지는 진보 정당에 표를 던졌다. 살아갈 날보다 살아 온 날들이 곱절은 더 많겠지만, 나는 사는 날까지 민중후보·진보정당에 표를 던질 것이다. 나의 젊은 시절은 민중과 진보를 빼고는 아무것도 성립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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