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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한 토끼도 다 있네”
동료들의 반응이었습니다. 어느 주말 하릴없이 소요하던 나의 귀에 요란스런 닭 울음이 들렸습니다. 대낮의 허공에 울려 퍼지는 소리는 공포에 찌든 닭의 비명이었습니다. 석축을 한 면으로 폐그물로 얼기설기 두른 임시방편의 닭장 부근에서 나는 소리였습니다. 어이가 없기도 하고, 믿지 못할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고 있었습니다. 헐거운 폐그물 우리 안으로 들어가려 빈틈을 두리번거리는 검정닭의 잔등에 흰색 바탕의 회색 얼룩무늬 토끼가 올라탔습니다. 토끼는 앞발을 높이 들어 올렸다가 힘껏 닭의 잔등을 내리쳤습니다. 닭이 놀라 몸을 뒤틀자 토끼는 할 수없이 땅에 내려 섰습니다. 하지만 녀석은 점프를 뛰어 다시 닭 잔등에 올라탔습니다. 녀석의 행동은 흡사 닭을 괴롭히는 조폭 토끼 같았습니다.
동료들은 자투리 공사 자재로 관사 뒤울안 당단풍나무 옆에 녀석들의 집을 새로 지었습니다. 우리의 식구는 괴롭힘을 당하던 검정닭을 비롯한 재래종 닭 4마리와 오골계 2마리, 그리고 흰색 바탕 회색 얼룩무늬 토끼 2마리와 잿빛 토끼 1마리 모두 9마리입니다. 토끼와 닭은 우려와 달리 사이좋게 새 집에 한 살림을 차렸습니다. 오골계는 푸른빛이 도는 계란을, 재래종 암탉은 누런 유정란을 매일 낳았습니다. 어느 날부터 닭이 계란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질세라 토끼도 새끼를 낳았습니다. 어미 털빛과 똑같이 잿빛 1마리, 얼룩무늬 2마리였습니다. 우리 한 켠에 어미닭이 부리로 새끼를 쪼지 못하게 플라스틱 상자로 덮어 주었습니다.
토끼의 번식력은 무서웠습니다. 토끼는 일 년 내내 번식이 가능하다고 합니다. 경험이 없어 3마리의 첫 배 새끼를 모두 잃었지만, 지금 토끼 새끼는 모두 9마리가 되었습니다. 세상 빛을 본 형·누나 토끼가 스스로 풀을 먹기 시작하면 어미는 다시 새끼를 낳아 젓을 먹입니다. 우리가 토끼로 가득 찰 지경입니다. 수컷 토끼를 따로 떼어놓아야겠습니다. 우리를 둘러 친 망에 참새 두 마리가 매달렸습니다. 철망의 틈새가 넓어 참새들이 마음 놓고 들락거립니다. 녀석들은 수시로 드나들며 닭 사료를 훔쳐 먹었습니다. 인기척에 놀란 십여 마리의 참새가 우리 안에서 바깥으로 총알처럼 튀어 나왔습니다. 녀석들은 당단풍나무 가지에 앉아있다, 일제히 비행을 시작합니다. 우리의 철망을 발가락으로 움켜쥐고, 머리부터 안으로 디밀어서 몸을 빼 날아 들어갑니다. 토끼와 닭 그리고 참새의 동거는 그런대로 무난해 보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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