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빈창을 아시는가

묵정밭의 양파

대빈창 2019. 7. 1. 07:00

 

 

 

 

이십여 년 전 남도를 여행하다 드넓은 양파밭을 보고 저는 놀랬습니다. 단순한 생각으로 파에 접두사 양(洋)이 붙어, 유럽이나 미국의 양념채소로 알고 있었습니다. 제가 태어나고 자란 김포는 양파가 귀했습니다. 먹을 것이 궁했던 어린 시절, 꽁꽁 언 땅에 묻힌 대파 뿌리를 캐 짚불에 구워 먹었습니다. 아무리 기억을 되살려도 양파는 찾을 수 없었습니다. 어머니가 오일장에서 머리에 이고 오신 10개들이 그물 포장에 담긴 양파가 기억의 전부입니다. 아버지는 물에 만 찬밥에, 네 쪽으로 쪼갠 양파를 고추장에 찍어 급하게 점심을 드시고 논으로 향하셨습니다. 십여 년 전 주문도에 삶터를 꾸리고 텃밭에 양파를 처음 심었습니다. 찬바람이 일면 마늘은 갈무리한 종구를, 양파는 읍내 종묘상의 양파모종을 구해 텃밭에 이식했습니다. 섬의 양파는 달디 달았습니다. 막 수확한 양파를 외피만 벗겨, 네 쪽으로 썰어 고추장에 찍어먹는 맛이 그만입니다. 해풍을 맞으며 자라 양파가 달다고 이웃들은 다른 입으로 같은 말을 하였습니다.

지난 겨울, 날씨가 따뜻하고 적당히 비가 내려 양파가 대풍작을 이루었습니다. 전국 재배면적은 지난해보다 17.2% 감소한 1만 8923㏊이었습니다. 생산량은 평년보다 15만t가량 늘어난 128만 1000여t에 이른다고 합니다. 가락동 농산물도매시장에서 ㎏당 410원에 거래되었습니다. 지난해 같은 기간의 가격에 절반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양파 산지는 전남 무안입니다. 양파재배 농민들은 풍년이 들어 어깨춤은 고사하고, 수확을 앞둔 양파를 두고 서러운 눈물을 쏟았습니다. 이 땅의 살농(殺農) 정책은 풍년이 들면 나 몰라라 팔짱을 끼었다가, 흉년이 들면 외국 농산물을 급히 수입해 소비자의 아우성을 잠재웠습니다. 이래저래 가난한 농부들만 안팎곱사등이 신세였습니다.

위 이미지는 아침 산책에서 눈에 뜨인 봉구산 자락을 일군 묵정밭 양파입니다. 오래 전 땅임자는 가족을 이끌고 대처로 나갔을 것입니다. 강화속노랑고구마가 다이어트 식품으로 각광을 받자 외딴 섬의 밭마다 고구마를 심었습니다.  반짝 경기가 시들해지자, 늦봄에 고구마 묘를 심고, 서리가 내리기 전 수확을 하러 섬에 드나들던 외지인들의 발걸음이 끊어진 지 3 ~ 4년이 되었습니다. 개망초만 우거졌던 묵은 밭 한 켠에 누군가 양파 모종을 심었습니다. 고라니 방지용 울타리 폐그물 위로 양파 추대가 솟구쳤습니다. 폐그물 울타리에 매달려 내려다보니 알뿌리가 4개씩 붙었습니다. 나무의 나이테처럼 겨울을 날 때마다 한 개씩 불어난 것인 지 모르겠습니다. 주민들이 ‘숫다마네기’라고 부르는 양파 추대는 꽃대입니다.

농민들은 양파 추대가 나오자마자 뽑아 버렸습니다. 꽃대가 올라오기 시작하면 양파는 더 이상 자라지 않았습니다. 양파 안에 심지가 생겨 먹기에도 불편합니다. 김포 한들고개 정상의 우리집 텃밭은 양파를 키울 수 없었습니다. 땅이 시멘트처럼 딱딱해 물기를 머금지 못했습니다. 주문도로 이사와서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양파를 심었습니다. 찬바람이 일기 시작하면 읍내 종묘상에서 두 세판 양파 모종을 사왔습니다. 부족한 모는 뒷집 형수가 씨를 부어 키운 실처럼 가는 모를 얻어와 심었습니다. 우리 집 텃밭 양파 농사도 어느덧 강산이 변한다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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