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 이미지를 스마트폰에 담으면서 가장 먼저 떠올린 책은 『식물의 정신세계』입니다. 법정스님이 열반에 드신 후 공허한 마음으로 스님이 남기 신 글을 찾다 『법정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책은 스님이 대중에게 권한 50여권의 책 중 한 권으로 부제가 ‘식물도 생각한다’였습니다. 식물은 단순히 살아 숨 쉴 뿐 아니라 영혼과 개성을 지닌 생명이라고 말합니다. 1966년 미국 뉴욕의 거짓말탐지기 검사전문가인 백스터는 엉뚱하게 사무실의 관엽식물에 거짓말탐지기를 들이댔습니다. 거짓말처럼 식물이 반응을 나타냈습니다. 이를 '백스터 효과'라고 그의 이름을 따 명명했습니다. 정신 영역이 식물에 존재하고 있었습니다. 덩굴손 식물이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면 신기하기 그지없습니다. 완두콩이나 포도는 잡을거리가 있는 허공으로 정확히 덩굴손을 뻗었습니다. 클래식을 들으며 자란 무는 우람하고 곧은 뿌리를 내리고, 헤비메탈을 듣는 무는 뿌리가 제 멋대로 뻗는 미친 현상이 나타난다고 합니다.
대빈창 해변 바위벼랑의 나무테크 공사는 올해 이른 봄에 완공을 보았습니다. 해안 코앞까지 다가 선 직각에 가까운 산사면은 아까시가 숲을 이루었습니다. 인간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 아까시 나무들은 제멋대로 자라 높이가 33자(尺)를 넘었습니다. 서향을 바라보는 지형은 개화시기가 늦어 이제 아까시꽃이 만발했습니다. 공사 인부들에게 제멋대로 자란 나무들은 작업공정에 방해가 되었을 것입니다. 나무테크 계단의 진행방향에 자리 잡았던 나무들이 밑둥이 잘린 채 나동그라졌습니다. 가파른 산사면을 가로지른 나무테크아래 찔레꽃과 아까시꽃이 장했습니다. 눈 가리고 야옹이었습니다. 나무계단 쉴참의 두 그루 소나무도 바닥에 구멍을 뚫었을 뿐이지 난간이 지나는 옆구리는 톱질로 깊게 파여 송진을 뚝뚝 흘리고 있었습니다. 산날맹이의 계단 난간 마무리는 소나무에 대못을 박아 고정시켰습니다.
만개한 꽃을 매단 아까시 나무가 바위벼랑 아래로 줄기와 가지를 뻗쳤습니다. 아니 톱질에 잘리면서 무게를 못 이겨 쓰러졌습니다. 주름 깊은 겉껍질만 밑둥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나무는 겨울에 잘렸습니다. 일를 마친 인부들은 이른 봄에 현장에서 철수했습니다. 아까시나무는 1/10만 남겨진 물관으로 힘겹게 뿌리에서 줄기와 가지로 물을 올려 마지막 꽃을 피웠습니다. 주위의 성한 나무에 뒤지지 않게 꽃이 무성했습니다. 밑둥이 배인 아까시 나무가 단말마 신음을 뱉어내며 마지막 후손을 남기려는 처참한 모습이었습니다. 지금 시대는 인간의 손길이 닿으면 남아나는 것이 없습니다. 바위 벼랑에 뿌리를 내려 하늘이 부여한 온전한 삶을 살 줄 알았던 나무가 밑둥이 배어져 밭은 숨을 몰아쉬었습니다. 굽은 소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말도 이제 옛말이 되었습니다. 토건국가의 개발지상주의자들은 자연을 파괴시켜 조성한 인공 구조물에서 아름다움을 느끼는 미학을 유전자에 입력시켰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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