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공포와 전율의 나날
지은이 : 이승하
펴낸곳 : 시인동네
인터넷을 서핑하다 시집에 실린 사진 몇 커트가 눈에 들어왔다. 이미지의 고통스런 장면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시인 이. 승. 하. 책장에 자리 잡은 이백 여권의 시집에 이름은 없었다. 문학 평론이나 산문을 읽다가 그의 이름을 마주쳐도 나는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을 것이다. 시인은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에 「화가 뭉크와 함께」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등단작은 시집을 여는 첫 시였다. 시선집은 시인의 네 번째 시집 『폭력과 광기의 나날』에 수록된 많은 시와 전후의 시들을 선별하여 한데 묶었다.
시인 김사인은 표사에서 말했다. “인간의 말로는 무어라고 형용해볼 길조차 없어 보이는 저 난폭하고 무자비한 광경의 사진을 시 앞에 올려놓고 그 앞에서 시인의 여린 감성은 시를 이루지 못한 채 다만 피 흘린다.”고. 시선집은 국내외 신문·잡지에 실린 사진과 기사, 사진작가의 작품사진, 시사만화, 에드바르 뭉크의 그림 등을 詩 앞뒤로 배치하여 인류가 세계 각지에서 자행한 폭력과 광기의 맹목성을 고발했다.
학살 / 혁명 / 데모 / 전쟁 / 기아 / AIDS / 군부독재 / 아우슈비츠 / 소년병사 / 고문 / 난민 / 인종청소 / 파병 / 미나마타병 / 멸종 / 코뿔소 도살 / 학교 폭력 / 구타 / 모르핀 / 정신병원 / 악몽 / 토막살인 / 간질 발작 / 최루탄·화염병 / 삐끼 / 상상임신·가상섹스 / 사형
시인이 실험적인 작법으로 그려 낸 시편들에 실린 이미지의 장면들이었다. 시선집은 개정판으로 「自序」가 두 개였고, 1·2부에 나뉘어 56시편이 실렸다. 발문과 해설 없이 시인과 문학기자의 표사 3편이 뒷표지를 장식했다. 시편을 읽어나가다 나는 여기서 헉! 하고 깊은 숨을 들이켰다. 휴머니스트 사진작가 최민식의 사진집 『HUMAN』의 ‘외팔·외다리 신문팔이’를 다시 만났다. 김기택의 시집 『사무원』을 잡다, 머리가 하얗게 비워지는 경험을 했다. 시 「대칭 2」가 세밀하게 묘사한 이미지의 충격 때문이었다. 마지막은 같은 이미지를 읊은 「외다리로 뛰는 자」(142 - 144쪽)의 2연이다.
그대는 지금 ‘국회 공천 상위(常委) 정상화’라는 / 1면 톱기사가 난 신문을 / 정치가가 된 장군들에게 / 사업가가 된 성직자들에게 / 배달하러 뛰어가고 있는가 / 팔과 다리를 하나씩 절단한 / 이 땅의 버림받은 군상을 외면한 채 / 현금함을 엿보는 예수가 있다면 / 묵비권을 행사하는 예수가 있다면 / 대권주자의 기도를 들어주는 예수가 있다면 / 외다리로 부지런히 뛰어가 / 그의 얼굴에 그 신문을 덮게 / 외다리로 죽을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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