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사계

대빈창 2021. 2. 17. 07:00

 

책이름 : 사계

지은이 : 변홍철

펴낸곳 : 한티재

 

『어린왕자, 후쿠시마 이후』(2012) / 『詩와 공화국』(2015) / 사계(2019)

 

시인의 시집 두 권과 산문집은 도서출판 《한티재》에서 출판되었다. 대구 지역 출판사가 문을 연 지 벌써 10년이 되었다. 모든 분야에서 극단적 중앙집중제가 활개 치는 이 땅에서 어려운 여건을 무릎 쓰고 꾸준히 책을 내는 지역출판사에 뜨거운 박수를 보냈다. 발행인과 시인 편집장은 부부였다.

발문은 김용찬(순천대 교수)의 「계절의 형상과 현실에 대한 응시」였다.  “계절들이 환기하는 일반적인 이미지를 탈피하여, 작품에 반영된 계절의 형상은 시인이 응시한 현실과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109쪽)라고 했다. 시편은 61편이 실렸고, 계절처럼 4부로 나뉘었다. ‘입춘’에서 ‘동지’까지 절기를 제목으로 붙인 시편이 15개였다. 詩 속의 절기까지 더하면 모두 18개의 절기가 나왔다. 시인은 어느 해 농촌에 살면서, 농사를 짖는데 절기가 정확하게 들어맞는 것을 새삼 깨닫고 시적 형상화에 매달렸다.

첫 시 「영주행」의 ‘벼 밑동만 남은 논바닥’에서 알 수 있듯 시편의 계절은 늦겨울에서 시작하여 봄, 여름, 가을로 이어졌다. 첫 시를 열면서 나의 기억은 25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죽령터널이 뚫리기 전, 왕복 2차선 죽령고개를 밤중에 오르고 있었다. 컨테이너 덤프트럭 두 대가 앞에 서서 구절양장 고개를 추월할 수 없었다. 고개를 넘기까지 2시간이 소요되었다. 신경 끝까지 곤두 선 긴장으로 나는 순흥읍에 닿자마자 골아 떨어졌다. 부석사와 소수서원의 답사길은 그렇게 시작부터 악전고투였었다. 영주는 오래 나의 기억에 남았다.

마지막 시편에서 나는 무릎 관절이 많이 아프신 어머니가 낮잠을 주무시다, 빗소리에 깨어 뒤울안에 널린 고구마 줄기를 평상 위로 끌어올리는 모습을 떠올렸다. 「낮잠」(69쪽)의 전문이다.

 

먼 데 꿩이 비를 피하는 소리에 깨었다. // 다듬어진 고구마 줄기가 수북하였다. // 저렇게 허리 굽은 어머니가 살아 계셔서 다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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