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기독교는 어떻게 역사의 승자가 되었나
지은이 : 바트 어만
옮긴이 : 허형은
펴낸곳 : 갈라파고스
나의 착각이었다. 표지 중앙의 작은 그림은 십자가를 두 손으로 움켜 쥔 문양이 아니라, 스테인드글라스(stained glass)였다. 예수 신화의 역사적 연원을 밝힌 『예수는 어떻게 신이 되었나』, 고통과 신앙의 관계를 분석한 『고통, 인간의 문제인가 신의 문제인가』에 이어 종교학자 바트 어만(Bart D. Ehrman)의 책을 세 권 째 잡았다. 반가웠다. 저자의 신간이 나왔다. 죽음과 그 이후의 기독교적 세계관에 대한 성찰을 도모한 『두렵고 황홀한 역사』를 부리나케 군립도서관 희망도서로 신청했다.
『기독교는 어떻게 역사의 승자가 되었나』는 서기 312년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로 개종하지 않았다면 역사는 어느 방향으로 흘러갔을까를 전제로 하여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저자는 관련 사료를 통해 기독교의 성장 배경을 짚었다. 초기 신도들이 겪은 기적, 포교 방식, 기독교의 높은 윤리기준, 교회 공동체의 자선활동,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와 사도 바울의 개종, 기독교의 배타성 등이 논증의 소재였다. 신약에 따르면 예수의 십자가 처형이후 부활을 믿는 남자 열 한명과 여자 몇 명이 교회운동을 시작했다. 이들은 모두 이스라엘 왕국 북쪽의 갈릴리 시골마을 출신이었다. 20명의 신도로 시작한 작은 유대종파 기독교는 400년 만에 신도수가 3천만 명이 넘었다.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로마의 밀비우스 다리 전투를 앞두고, 환영을 보았다. 하늘 한가운데 걸린 태양 위에, 빛으로 형태가 잡힌 십자 모양의 트로피와 그 옆에 쓰인 글귀 ‘이로써 정복하라’를 목격했다. 꿈에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 하늘에서 본 모양을 본 떠 적의 공격에서 지켜 줄 부적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X자를 새긴 다음 꼭대기에 동그라미가 붙은 I로 X자를 세로로 지른 표식이었다. 카이 Chi와 로Rho는 그리스도를 뜻하는 그리스어의 초성 두 글자였다. 콘스탄티누스의 개종은 기독교 승리의 분수령이었다. 그의 개종으로 기독교는 박해받는 비주류에서 로마 제국의 종교로 자리 잡았다. 지배층은 물론 제국의 백성들도 대거 개종을 하기 시작했다.
기독교 역사상 가장 중대한 개종자 2인으로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이교도에서 기독교로 개종했다면, 사도 비울은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가난한 천막장이 작업장이었다. 사도 바울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후 서기 33년 개종했다. 그의 처음 설교는 천막을 찾아오는 날품팔이 손님들이었다. 바울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 그리스도의 구원은 유대인을 넘어 모든 사람들에게 효력이 있다는 복음을 전파했다. 유대교를 넘어 보편 종교로 기독교를 반석에 올려놓은 것은 사도 바울이었다. 콘스탄티누스와 사도 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지 않았다면 모두에게 열린 종교라는 기독교는 유례없는 세계적 현상으로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사두개파나 에세네파처럼 유대교의 한 분파로 남았을 것이다.
기독교는 로마 제국을 점령했다. 콘스탄티노플은 1413년 오스만 제국의 침략에 무너질 때까지 천년이 넘도록 세계 기독교의 수도였다. 21세기 현재 기독교는 20억 신도를 두고 세계 질서는 물론 문화·예술을 아우르는 가장 지배적인 종교가 되었다. 바트 어만은 말했다. “기독교 신자가 아닐 수는 있겠지만 기독교의 영향권 밖에서 살아가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나의 책 리뷰나 체험을 적은 글 3편이 기독교 측의 명예훼손 시비에 휘말렸다. 성장지상주의, 물질만능주의 그리고 기복 신앙에 빠진 한국 교회의 속물주의를 비판한 글들이었다. 거대 조직의 신경망을 동원하여 그들은 이름 없는 블로거의 글마저 샅샅이 훑었다. 그렇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려면 종교의 자유를 만끽(?)하는 보수교회와의 갈등에 초연해질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