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이름 : 책벌레와 메모광
지은이 : 정민
펴낸곳 : 문학동네
책은 옛 사람들의 책과 메모에 관한 이야기였다. 1부는 책에 미친 책벌레와 옛 책을 둘러싼 흥미로운 이야기를, 2부는 기록에 홀린 메모광과 옛 사람의 기록에 대한 일화를 그렸다.
“어려서부터 스물한 살 때까지 하루도 고서를 손에 놓은 적이 없다. 그 방은 몹시 작다. 하지만 동쪽, 남쪽, 서쪽에 창문이 나 있다. 해가 동쪽에 있으면 동창 아래서 읽고, 서쪽으로 기울면 서창 아래서 빛을 받아 책을 읽었다.” 조선 최고의 책벌레 청장관靑莊館 이덕무(李德懋, 1741 - 1793)가 「간서치전看書痴傳 - 책만 보는 바보」에서 자신에 대해 쓴 글이다. 그의 삶에서 책을 빼면 남는 것이 아무 것도 없었다.
이덕무는 젊은 시절 자신의 서재를 구서재九書齋라 했다. 독서讀書는 입으로 소리 내어 가락을 맞춰 읽는 것. 간서看書는 눈으로 읽는 것. 초서 鈔書는 중요한 부분을 베껴가며 손으로 읽는 것. 교서校書는 교정해가며 읽는 것. 평서評書는 책을 읽고 나서 감상과 평을 남기는 것. 저서著書는 내가 저자가 되는 것. 장서藏書는 책을 보관하는 것. 차서借書는 남에게 책을 빌리는 것. 포서曝書는 책을 햇볕을 쬐어 말리는 것.
한중일 장서인藏書人 문화비교, 바람 잘 부는 날 책을 말리는 독서인의 연중행사 쇄서曬書, 남에게 사례를 받고 책을 베껴 써주는 사람 용서인 傭書人.(중국 후한의 반초班超, 삼국시대 감택闞澤, 조선 후기의 이덕무李德懋, 품팔이 은자란 뜻의 용은傭隱 김숙, 종으로 이름 높은 시인이었던 이단전의 호는 필재疋齋로 파자하면 하인下人이 되었다), 책벌레 퇴치용으로 책갈피에 끼운 은행잎과 운초芸草, 책갈피에 눌린 채 붙은 100년도 더 된 청나라의 모기 10여 마리, 두 종류 이상의 색깔을 입힌 인쇄술 투인본套印本, 초교를 보기 위해 교정쇄를 묶은 책 홍인본紅印本·주인본朱印本, 재교정용 남인본藍印本.
떠오르는 생각은 그때그때 붙들어두지 않으면 연기처럼 사라지고 만다. 옛 선비들의 앉은뱅이책상 곁에 항아리나 궤짝, 대나무로 짠 상자 협사篋笥가 놓였다. 공부를 하다 생각이 떠오르면 곁에 쌓아 둔 종이에 적어 상자에 넣었다. 『앙엽기盎葉記』는 이덕무가 메모를 모은 책, 『열하일기』의 핍진성과 현장감은 박지원의 즉석 메모 덕분에 가능했다. 그는 나비 날개만한 종이쪽지에 파리 대가리만한 글씨로 보고 들은 것을 정신없이 메모했다. 연암의 아들 박종채의 『과정록 過庭錄』은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메모로 집적해 만들어졌다. 영남대 동빈문고東濱文庫의 청나라 학자 서건학徐乾學의 『독례통고讀禮通考』는 다산의 빼곡한 메모로 보물 대접을 받고 있다.
송宋나라 학자 횡거橫渠 장재張載의 저서 『정몽 正蒙』은 오랜 메모의 결정체였다. 그는 기거하는 곳 여기저기에 붓과 벼루를 놓아두었다. 한밤중에 누웠다가도 생각이 떠오르면 벌떡 일어나 등불을 가져와 바로 적었다. 나중에 잊어버릴 것을 걱정해서였다. 나는 여기서 시인 이정록을 떠올렸다. 시인은 잠들기 전, 머리맡에 메모지와 볼펜을 준비했다. 꿈속에서 시상이 떠오르면 즉각 받아 적으려는 조치였다. 실학實學의 태두泰斗 이익李瀷의 『성호사설星湖僿設』은 메모로 시작해서 메모로 끝났다.
마지막 책장을 덮었다. 파워라이터 고전 인문학자 정민의 놀라운 다작 능력은 어디서 연유하는지 감을 잡을 수가 있었다. 물론 그의 학문적 성실성이 대수이겠지만 끊임없는 메모와 자투리 시간에 찍어놓은 사진을 제본하는 부지런함이 바탕이 되었다. 군립도서관의 책 대여기간은 3주였다. 나는 섬을 벗어날 적마다 도서관에 들러 다섯 권의 책을 빌렸다. 그중 한 권의 책 지은이는 정민이었다.
'책을 되새김질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습정習靜 (0) | 2021.02.26 |
---|---|
나와 같다고 옳고, 다르면 그른 것인가 (0) | 2021.02.25 |
기독교는 어떻게 역사의 승자가 되었나 (0) | 2021.02.23 |
신안 (0) | 2021.02.19 |
이것이 인간인가 (0) | 2021.02.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