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자본주의: 유령 이야기

대빈창 2021. 3. 26. 07:00

 

책이름 : 자본주의 - 유령 이야기

지은이 : 아룬다티 로이

옮긴이 : 김지선

펴낸곳 : 문학동네

 

총 27층에 헬리콥터 이착륙장 세 곳, 엘리베이터 아홉 대, 공중정원, 무도회장, 웨더룸, 체련단련실, 여섯 층에 이르는 주차장, 600명의 하인, 그리고 27층짜리 건물 벽의 광활한 금속판을 뒤덮은 잔디. 이야기는 인도의 세계적 거부 무케시 암바시의 뭄바이 대저택 ‘안틸라’에서 시작되었다. 무케시의 개인 재산은 무려 200억 달러였다. 뭄바이에 어둠이 내리면 풀 먹인 리넨 셔츠를 입고 워키토키를 든 경비병들이 안틸라를 지켰다. 유령들을 쫓아내기 위한 문지기들이었다. 암바니 일가는 거대한 현대식 궁전을 대부분 비워두었다. 암바니가 지배하는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는 방송국, 생명과학연구소, 학교, 석유회사 등 인도의 언론과 교육, 산업 전반을 손에 움켜쥐었다.

인구 13억의 인도경제는 상위권 부자 100명이 국내총생산 1/4를 장악했다. 빚에 쪼들려 스스로 목숨을 끊은 농민이 25만 명이었다. 그나마 가진 것을 빼앗기고 내쫓긴 8억3천명의 유령들은 하루 20루피(원화로 300 - 400원)도 안 되는 돈으로 근근이 연명했다. 흔히 인도를 세계 최대 민주주의 국가라고 한다. 이는 몇 년 만에 한번 찾아오는 선거에서 표를 던질 수 있는 유권자를 의미하는 숫자 타령이었다. 인도는 세계 최악의 자본주의 국가였다. 아룬다티 로이는 가난한 사람들은 아무리 노력해도 여전히 가난하고 부유한 사람들은 더욱 쉽게 부유해지는 현실의 이면을 까밝혔다.

그는 여러 현장을 발로 뛰며 조사와 취재를 벌여, 인도에서 벌어지는 신자유주의 작동 방식을 눈앞에 드러냈다. 인도의 거대 기업들은 미국의 록펠러, 카네기, 포드 재단의 '자선사업(?)'을 벤치마킹했다. 그들은 문학축제를 열고, 병원을 건립하고, 거액의 기부금을 내놓으며 자사의 언론방송을 통해 극악무도한 탐욕을 눈 가리고 야옹했다. 자본주의의 부조리를 명확하게 드러낸 르포르타주는 인도와 미국 정부, 대기업뿐만이 아니었다.

그의 가차 없는 시선은 노벨평화상 수상자 만델라도 예외일 수 없었다. 남아프리카 첫 흑인 대통령 넬슨 만델라는 살아있는 성자로 불렸다. 이는 단순히 감옥에서 27년을 보낸 자유의 투사에게 보낸 찬사가 아니었다. 그는 미국식 자본주의 발전모델을 택했다. 록펠러 재단은 아프리카민족회의(ANC)를 후원했고 사회주의 의제는 사라졌다. 토지개혁과 보상, 광산의 국유화가 물건너갔다. 대신 사유화와 구조조정이 그 자리를 꿰찼다. 만델라는 최고의 훈장(희망훈장)을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에게 수여했다. 그는 33년 동안 장기 집권하면서 철권통치와 부패로 악명이 높았다. 만델라의 오랜 벗이자 후원자였다.

르포르타주는 빈민을 향한 묵념이면서 부자를 향한 선언이었다. 에필로그로 작가의 피플스유니버시티 강연이 실렸다. 탐욕이 극에 달한 자본주의로 인해 민주주의는 시들어버렸다. 이를 소생시키기 위한 우리의 행동을 그는 역설했다. ‘월가를 점령하라’는 시위가 답이었다.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일어서서 가장 부유한 기업들의 앞길을 막는 저항운동이 지구 곳곳으로 퍼져나가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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