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

대빈창 2021. 3. 29. 07:00

 

책이름 :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

지은이 : 김종철

펴낸곳 : 삼인

 

부제 ‘인간·흙·상상력에 관한 에세이’라는 부제가 붙은 비평집은 선생의 두 번째 문학 평론집이었다. 내가 손에 잡은 책은 개정증보판으로 2018년 3판이었다. 겉표지를 벗기자 표지사진과 같은 45도 옆모습의 선생이 속표지에 나타났다. 녹색의 양장으로 꾸려진 속표지는 생태를 상징하는 것이 틀림없었다. 거의 전부 〈녹색평론〉에서 출간된 선생의 책들은 재생 종이를 사용해 볼품(?)이 없었다. 선생이 돌아가시자, 고급스런 양장본으로 펴낸 문학평론집이 위안(?)이 되었다. 나의 저급한 생각을 선생은 저 세상에서 쯧쯧! 혀를 차실지 모르겠다.

‘자발적 가난’의 출판사 〈녹색평론〉은 ‘대박’을 스스로 걷어찼다. 베스트셀러는 따 논 당상이었던 MBC〈!느낌표〉에서 산문집 『우리들의 하느님』을 지정도서로 선정하였다. 출판인 김종철 선생과 아동문학가 故 권정생은 방송사의 제의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훗날 선생을 말했다. “만약에 그 제안을 받아들였다면 녹색평론사는 아마 고생했을 것이다. 판이 커지면 그것을 계속 유지하기 위행 무리한 짓을 하게 된다. 오롯하게 작은 출판사로 눈치 안보고 일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지금 생각해도 잘 물리쳤다. 그런 점에서는 내가 영리했다”

선생은 돌아가시기 전 이명耳鳴으로 고생을 많이 하셨다. 얼마나 아프셨으면 분신처럼 여겼던 『녹색평론』의 서문을 끝내 손을 못 대셨을까. 선생이 돌아가시고 세 권의 책을 손에 넣었다. 『근대문명에서 생태문명으로』는 책씻이했고,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은 리뷰를 긁적이고, 『大地의 상상력』은 나의 손길을 기다렸다.

초판본은 1999년 7월에 나왔다. 선생의 첫 문학평론집 『시와 역사적 상상력』(문학과지성사, 1978) 이후 20여년 만에 묶인 비평집은 생태학적 사유를 중심으로 펼친 문학론이었다. 1부의 4편, 2부의 4편은 생태학적 문화와 문학비평이 실렸고, 3부의 7편의 글은 생태학적 맹아를 찾을 수 있는 오래 묵은 글들이었다. 2부의 글은 식민지의 민중 현실을 그린 이용악, 고대 이상사회를 이상향으로 근대문명을 비판한 신동엽, 농촌·농민·농업 공동체를 노래한 심호택, 생명을 읊은 마산의 시인 이선관의 시인론이었다.

실린 글들은「이야기꾼의 소멸」(1977)에서 계간 시전문지 『시와 생명』 창간 대담(1999)까지 무려 22년의 시간 표차가 있었다. 책은 선생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평론집이었다. 일본의 문학평론가·사상가 가라타니 고진은 선생이 걸어간 길을 보며 ‘근대문학의 종언’을 예언했다. 선생은 문학을 떠나 가장 절박하다고 생각한 생태문제를 다루는 『녹색평론』을 창간했다.

‘소년 시절에는 시인이 되는 게 꿈이었다.’ 서문의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되었다. 그렇다. 『녹색평론』은 매호마다 몇 편의 시를 실었다. 선생은 말했다. “‘인간의 손으로 건드려서는 안 될 것이 있는’데 대한 근본적인 감각이야말로 모든 시가 태어나는 모태이며, 그런 의미에서 진정한 시인은 모두 본질적으로 가장 심오한 생태론자 일수 밖에 없는 것이다.”(6 - 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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