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주기율표
지은이 : 프리모 레비
옮긴이 : 이현경
펴낸곳 : 돌베개
프리모 레비(Primo Michele Levi, 1919 - 1987)는 아우슈비츠에서 살아 돌아왔다. 그는 아우슈비츠 생존자로서 자신의 위치를 성찰적 거리에 두었다.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과 시오니즘의 배타적 민족주의에 비판적 관점을 취했다. 나치즘의 유대인 학살의 진실을 밝히는 증언문학의 고전적 명작으로 빅터 프랭클의 『밤과 안개』, 엘리 비젤의 『밤』, 안네 프랑크의 『안네의 일기』, 프리모 네비의 『이것이 인간인가』를 손꼽았다. 레비의 첫 작품 『이것이 인간인가』는 수용소 생활을 냉철하고 극명하게 성찰했다. 아우슈비츠를 통해 인간성의 한계를 성찰한 현대문학의 고전으로 꼽히는 작품이었다.
2007년 출판사 〈돌베개〉는 『이것이 인간인가』와 『주기율표』를 국내에 소개했다. 스물한 장으로 구성된 『주기율표』는 원소마다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이야기들로 채워졌다. 각 장은 독립된 완결성을 갖추고, 조각들이 모인 전체 그림은 놀라웠다. 이 기발하고 독특한 구성은 레비의 파란만장한 삶의 명상록과 회고록의 성격을 가졌다.
아르곤 / 수소 / 아연 / 철 / 칼륨 / 니켈 / 납 / 수은 / 인 / 금 / 세륨 / 크롬 / 황 / 티타늄 / 비소 / 질소 / 주석 / 우라늄 / 은 / 바나듐 / 탄소
첫 이야기 「아르곤」은, 비활성 기체였다. 그리스어에서 따온 ‘새로운 것’(네온), ‘숨겨진 것’(크렙톤), ‘움직임 없는 것’(아르곤), ‘낯선 것’(제논)이 해당됐다. 이들은 어떤 화학 반응에도 개입하지 않고 다른 원소와 결합하지도 않았다. 움직임이 없는 아르곤은 공기의 1퍼센트를 차지할 정도로 많은 양이 존재했다. 작가의 선조들은 이탈리아의 피에몬테 지방에 정착한 유대인들의 관습·생활방식과 은어를 묘사했다.
마지막 이야기 「탄소」는, 태양에너지가 화학적으로 이용될 수 있는 광합성은 탄소가 살아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탄소 원자 하나가 프리모 레비의 뇌세포에 자리 잡았다. 소설은 이렇게 끝을 맺었다. ‘지금 이 순간 미궁처럼 복잡한 줄거리를 벗어나 내 손으로 하여금 종이 위의 어떤 여정을 따라 달려가며 기호들의 소용돌이를 그리게 해주는 것은 바로 이 세포다: 위로, 아래로, 두 차원의 에너지 사이로 이중 도약을 한 이 세포는 내 손을 이끌어 종이 위에 점 하나를 찍게 만든다, 바로 이 마침표를.’(337쪽)
마지막의 두 번째 장 「바나듐」은 현대 세계의 전쟁·식민지배의 책임을 물었다. 니스의 건조력 문제로 레비는 니스의 공급자 독일의 대기업 W에 항의 편지를 썼다. 문제의 물품에 나프텐산바나듐 0.1퍼센트를 첨가하면 원상회복된다는 편지를 받았다. 편지 서명의 L. 뭘러 박사가 쓴 ‘나프테나테’라는 철자에서 레비는 아우슈비츠 부나공장의 실험실에서 만났던 뮐러 박사를 떠올렸다. 편지 왕래로 그가 실험실의 조직 책임자로 레비를 선발한 장본인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W기업의 모태는 나치 체제에서 독가스를 생산한 전범기업이었다. 6주후에 이탈리아에서 만나자는 뮐러 박사의 긴장과 흥분된 전화가 왔다. 8일후 뮐러 부인으로부터 남편이 60세를 일기로 갑자기 세상을 떴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마지막은 화학자·작가 프리모 레비의 극적인 삶을 떠올리게 만드는 다섯째 이야기 「칼륨」의 한 구절이다. “증류가 아름다운 건 변신이 일어나기 때문이기도 하다. 액체에서 (보이지 않는) 증기로, 증기에서 다시 액체로 말이다. 위로 아래로 두 겹의 여행을 하는 사이 마침내 순수한 것에 도달한다.”(8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