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세습 중산층 사회

대빈창 2021. 4. 8. 07:00

 

책이름 : 세습 중산층 사회

지은이 : 조귀동

펴낸곳 : 생각의힘

 

진보지식인 홍세화의 『미안함에 대하여』를 잡다, 책의 존재를 알았다. 신간이었다. 설마! 하는 심정으로 군립도서관을 검색했다. 반가웠다. 알지 못할 누군가가 희망도서를 신청했을 것이다. 계층 상승을 의미하는 사다리가 없어진 한국사회를 상징하는 표지그림이었다.  2019년 한국사회는  ‘조국 사태’라는 블랙홀에 빠졌다. 취임 35일 만에 사퇴한 조국 전 법무부 장관 논란의 세대 담론에서 가장 주목받은 세대가 20대였다. 논란의 핵심은 불평등과 불공정이었다.

작가는 구체적이고 방대한 데이터와 명확하고 통렬한 분석으로 2020년 이후의 한국사회와 20대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았다. 그의 분석에 의하면 조국 사태에서 20대의 핵심문제는 계층 또는 계급의 재생산이었다. ‘조국 사태’에 분노한 계층은 20대라는 말은 정확하지 않았다. 20대 내부에 자신감 넘치고 희망에 찬 태도가 특징인 G세대와 모든 것을 포기한 N포 세대가 공존하고 있었다. N포 세대는 20대 전체를 가리키는 용어가 아니라, 부유하고 유능한 부모를 두지 못한 20대에 해당되었다.

조국 사태가 낳은 풍경은 극소수 명문 대학생을 제외한 나머지 20대는 처음부터 냉소로 일관했다. 이들은 애초 한국 사회의 엘리트에 무관심했다. 오늘날 한국의 20대는 10% 중산층과 나머지 90%의 초격차 세대였다. 20대가 진보 세력에게 충분히 표를 주지않아 보수 세력이 이겼다는 이른바 ‘20대 개새끼론’은 있지도 않은 과녁을 향해 화살을 날린 꼴이었다. 문제는 '세대'가 아닌 '세습 중산층' 이었다.

『21세기 자본』의 프랑스 경제학자 토마 피케티 (Thomas Piketty, 1971 - )는 말했다. “부의 위계에 따라 구조화되어 있던 사회가 거의 전적으로 노동과 인적자본의 위계에 따라 구조화된 사회로 바뀌었다”고. 이 말은 현재 한국사회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20대가 겪는 불평등은 부모의 계급·계층 차이에서 출발했다. 흔히 ‘86세대’라 불리는 80년대 학번 60년대생 부모는 이 땅에서 학력·소득·직업·자산·사회적 네트워크 등 다중격차를 처음 만들어낸 세대였다. 그들은 대학정원 졸업제도, 경제호황기 노동시장 진입, 대기업의 급속한 성장에 따른 자산 증가, 부동산 가격 폭등 등 돼지꿈 같은 수혜를 받았다. 한국 자본주의 성장이 극대화된 시기의 '한강의 기적'이 쏟아낸 떡고물을 독차지한 세대였다.

이들은 교육 투자, 문화적 역량, 사회적 네트워크 등 무형 자산을 이용해 90년대생 자녀에게 동일한 지위를 물려주었다. 즉 세습 중산층 2세대가 형성되었다. 세습으로 20대 내부의 계급과 계층이 재생산되면서 20대는 하나의 세대로 묶일 수 없었다. 세대 내에 ‘초격차 세대’, ‘계층 양극화’, ‘단절 사회’등의 용어가 범람하는 시대였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90년대생들은 10퍼센트의 ‘세습 중산층 자녀 세대’가 명문대 졸업장과 괜찮은 일거리를 독식하는 불평등을 경험하는 집단이었다. 이것이 지금 20대가 경험하는 불평등이 이전 세대가 경험하는 불평등과 질적으로 다른 이유였다.

한국사회에서 노동시장은 1차 노동시장 - 내부자(인싸)는 대기업 정규직과 공무원으로 급여가 높고, 근속 년수가 길며, 연공서열제와 노동조합의 보호를 받았다. 2차 노동시장 - 외부자(아싸)는 중소기업 재직자와 기타 비정규직으로 급여가 낮고 근속 년수가 짧고, 계약 기간이 만료되면 일자리 불안에 시달렸다. 또한 휴일 근무와 야간 근무를 떠맡아야 하는 괴로움도, 불황기에 가장 먼저 해고당하는 고용 불안정도 2차 노동시장에 속한 사람의 몫이었다. 한 번 외부자가 되면 내부자로 승급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다.  20대의 90%가 느끼는 취업난은 이전 세대가 IMF 외환 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후에 겪었던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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