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청춘의 사신死神
지은이 : 서경식
옮긴이 : 김석희
펴낸곳 : 창작과비평사
재일교포학생 학원침투 간첩단사건. 저자의 두 형에게 1971년 3선을 획책하는 박정희 군사독재의 마수가 뻗쳤다. 조국에 유학(둘째형 서승은 서울대 대학원, 셋째형 서준식은 서울대)중이던 형들은 간첩으로 몰려 감옥에 갇혔다. 서승은 고문을 당하면서 간첩단 기획·조작의 음모를 벗어나려 분신을 시도했다. 화상으로 일그러진 얼굴은 참혹했다. 서준식은 사상전향의 잔인한 고문에 맞서 51일간 단식투쟁을 벌였다. 손목을 끊고 자살을 시도했다. 비전향장기수로 서승은 19년, 서준식은 17년 옥살이를 마치고 출옥했다.
10년 동안 50여회 한국을 오가며 두 아들을 지극정성으로 옥바라지하던 어머니가 돌아가셨다. 3년 후 아버지마저 세상을 떠나셨다. 누이는 열다섯살 때부터 어머니와 오빠들의 뒷바라지를 함께 했다. 망연자실한 누이를 위해 서경식은 유럽 여행을 떠났다. 아니 현실의 중압감을 피하려는 도피인지 몰랐다. 그때 그림이 눈에 들어왔다. 조국의 감옥에 갇힌 두 형의 구명(求命)을 위해 기나긴 시간을 보내고 있던 저자에게 그림은 고통을 견딜 수 있게 만든 ‘지하실의 작은 창窓’ 이었다.
『나의 서양미술 순례』(1999)는 참혹한 인간 현실을 직시한 서양미술을 통해 가혹한 운명의 비극적인 가족사를 되돌아보았다. 『청춘의 사신』(2002)은 ‘세계대전, 대량학살, 난민의 시대’ 20세기의 광기에 맞선 화가들의 악전고투에 관한 글이었다. 『고뇌의 원근법』(2009)은 전쟁과 폭력의 시대를 살아간 화가들의 시선으로 반전의 의미를 성찰했다. 나는 뒤늦게 『나의 서양미술 순례』를 잡고, 저자의 미술 에세이에 매료되었다. 『청춘의 사신』을 군립도서관에서 대여했다. 『고뇌의 원근법』은 온라인 서적 가트에 넣었다.
책의 부제는 ‘20세기의 악몽과 온몸으로 싸운 화가들’로 에드바르트 뭉크의 「생명의 춤」(1899 - 1900)에서 후지따 쯔구하루의 「싸이판 섬 동포, 신절을 다하다」(1945)까지 20세기 전반의 회화에 대한 31꼭지로 구성되었다. 구스타프 클림트의 「베토벤 프리즈: 적대하는 힘」(1902)은 시대를 너무 앞서 나갔다. 파국에 대한 불안은 현실이 되었다. 케테 콜비츠의 「죽은 아이를 안고 있는 어머니」(1903)는 슬픔에 잠긴 어머니의 이미지를 훨씬 뛰어넘어, 야차夜叉나 악귀처럼 보였다. 진정한 슬픔은 이런 것이었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의 「자화상」(1919)은 일찍부터 결핵을 앓던 화가는 죽음이 눈앞에 다가온 것을 깨달았을 때 비로소 자신의 초상화를 그렸다. 파울 클레의 「새로운 천사」(1920)를 알아 본 발터 벤야민은 계몽주의는 파시즘의 세계로 대치되고, 진보는 몰락하기에 이른다는 것을 최초로 인식한 사람 가운데 하나였다.
노다 히데오 「도회」(1934) / 하세가와 토시유끼 「중화요리점」(1936) / 아이 미쯔 「눈이 있는 풍경」(1938) / 후지따 쯔구하루 「싸이판 섬 동포, 신절을 다하다」(1945). 일본 화가들의 에세이는 4꼭지였다. 44컷의 컬러와 6컷의 흑백 도판은 독자들이 생생하고 세밀하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도록 이해를 도왔다. 저자는 20세기 회화의 대표작을 한 점만 고르라고 한다면 빠블로 삐까쏘의 「게르니카」(1937)를 꼽았다. 표제 『청춘의 사신死神』은 에곤 실레의 에세이에서 따왔다. 표지그림도 에곤 실레의 「죽음과 소녀」(1915)였다. 에곤 실레는 그림에서 자신을 사신(死神)으로 형상화했다. 그는 미성년자의 누드화를 그렸다는 억울한 누명을 쓰고 구속되면서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나의 예술과 내가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기꺼이 견뎌내겠다.”
'책을 되새김질하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이젠 없는 것들 1 (0) | 2021.04.23 |
---|---|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 (0) | 2021.04.22 |
식물의 책 (0) | 2021.04.19 |
어제 그곳 오늘 여기 (0) | 2021.04.16 |
이 고도古都를 사랑한다 (0) | 2021.04.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