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

대빈창 2021. 4. 22. 07:00

 

책이름 :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

지은이 : 한창훈

그린이 : 한단하

펴낸곳 : 한겨레출판

 

녹색평론 2021년 1-2월호(통권 제176호)를 잡았다. 생태사상가 故 김종철(1947 - 2020) 선생을 추모하는 소설가 한창훈의 「단 한 명의 스승만 있는 나라」라는 글을 만났다. 소설가의 20대 후반, 대전 신시가지 연립주택 공사현장에서 노가다를 했다. 강도 높은 노동은 점심을 얼른 먹고, 짧은 시간이나마 눈을 붙이게 만들었다. 어느날 점심시간 『녹색평론』 발행인 김종철의 칼럼이 실린 신문이 눈에 띄었다. 글의 제목은 「단 한 줄의 법조문만 있는 나라」였다.

남대서양 화산섬 트리스탄 다 쿠냐 섬 이야기였다. 섬은 수만 년 동안 무인도였다. 영국군이 주둔했으나 혹독한 환경으로 철수를 했다. 한 하사관 가족이 남았고, 표류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공동체가 형성되었다. 그 섬의 법조문은 단 한 줄이었다.

 

“어느 누구도 어느 누구보다 높지 않다.”

 

특권 없이 주민 전체가 공평하게 사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막노동자는 칼럼을 가위로 오려 오랫동안 읽고 또 읽었다. 잦은 이사로 언젠가 칼럼 쪽지를 잊어버렸다. 참여정부 시절,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는 시민사회 구성원의 덕목으로 우화풍 소설을 부탁했다. 시민 교육의 한 방편으로 소설문학을 활용하자는 취지였다. 정권이 바뀌고 민간독재의 칼바람이 춤을 추었다. 소설가는 5년 동안 작품을 틈틈이 썼다.

김종철 선생의 칼럼은 연작소설 첫 편 「그 나라로 간 사람들」로 재탄생했다. 다섯 편의 연작소설은 각 편마다 주제가 뚜렷했다. 「그 나라로 간 사람들」은 공정하고 평등한 법, 「쿠니의 이야기 들어주는 집」은 사람 사이의 관계 맺기, 「그 아이」는 개성을 무시하는 획일주의, 「다시 그곳으로」는 올바른 리더십이 부재한 독재,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는 일중독 사회를 풍자했다.

176쪽의 작고 얇은 책이지만 담고 있는 내용과 의미는 단단했다. 책에 실린 일러스트레이션 20점은 소설가의 외동딸 한단하가 그렸다. 칼럼을 읽은 지 25여 년 만에 소설가는 평등한 나라를 꿈꾸는 연작소설집을 펴냈다. 『녹색평론』을 잡고, 책이 출간된 지 5년 만에 나는 군립도서관에서 대여했다. 마지막 소설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는 녹색평론 2015년 11-12월호(통권 제145호)에 「기자의 하루」라는 제목으로 실렸다. 기억에 전혀 남아있지 않았다. 정기구독하는 생태인문 격월간지 『녹색평론』을 통해 「행복이라는 말이 없는 나라」와 「작가의 말」을 미리 읽을 셈이었다. ‘작가의 말’은 2016년 초여름 거문도에서 썼다. 그해 겨울 촛불혁명이 일렁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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