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교양인을 위한 세계사

대빈창 2010. 7. 11. 16:17

 

 

책이름 : 교양인을 위한 세계사

지은이 : 김윤태

펴낸곳 : 책과함께

 

81년도 예비고사와 본고사가 전격적으로 폐지되고 학력고사를 시행한 첫해에 나는 고교를 졸업했다. 나는 가난한 집안의 막내인지라 대학 진학을 미리 지레짐작 포기하고 있었는지도 몰랐다. 더군다나 나의 영어와 수학에 대한 인지도는 중학 수준에 불과했다. 영어는 발음기호도 몰라 철자대로 읽어나갔고, 수학은 방정식을 풀라고 하면 왜 X와 Y가 답이 나오는지 의아해했다. 당연히 국영수를 치르는 본고사가 있었다면 나의 점수는 형편없었을 것이다. 대학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막상 학력고사를 치르자, 내신성적이 별로였던 내가 전교 다섯손가락안에 드는 우수한 점수를 받았다. 심지어 선생들도 나의 점수를 보고 놀란 나머지 컨닝을 한 것이 아니냐고 입을 벌렸다. 학내 성적이 우수했던 범생이들은 코가 석자나 빠져 있었다. 물론 대학 진학 시험 절차가 바뀐 첫해인만큼 돌출변수가 많았던 것도 큰 요인이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나의 단순암기 능력이 일등공신이었다. 중간고사나 기말고사 시험을 치르고나면 나의 답안지가 게시판에 붙는 적이 여러번 있었다. 선생이 시험문제를 잘못 제출해도 나는 사지선다형에서 틀린 답 세가지를 모두 적어냈기 때문이다. 학우들은 내가 얄미웠을 것이다.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것도 내가 무슨 문학청년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단순하게 국어를 만점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긴 인생이란 여러번의 우연이 겹친 필연으로서의 진행 과정인지도 모르겠다. 그때 한국사나 세계사는 단순한 연대기의 나열이었다. 그랬다. 조선왕조실록의 사료적 가치보다는 '태종태세문단세~~'를 단순암기하는 능력이 더욱 중요한 이땅의 제도권 교육이었다. 그런데 이 책은 세계사를 24가지의 테마로 엮었고, 300년전의 산업혁명이후의 근현대사를 아우른, 입문서의 성격을 띤 에세이다. 저자는 세계사의 주요 사건과 현상들을 이 땅의 현실과 연결하여 해석한다. 또한 독자의 이해를 돕기위한 사진과 그림, 부연설명, '더 읽을거리'로 해당 테마의 참고문헌을 소개했다. 지은이는 강조한다. '역사는 새로운 상상력과 영감, 통찰력의 보고이다. 훌륭한 역사책은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분야의 다른 책보다 더 면밀하게 한 주제를 분석한다'고. 하지만 종합분석보다는 단순암기에 능한 나로서는 지난 20여년간 무작위로 읽어왔던 세계사 책들의 요점정리 시간이었다.

이 책에서 저자가 다루는 주제는 한마디로 '현대성'에 관한 이야기다. 그중 현대사상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인물은 자본론의 카를 마르크스, 정신분석학의 지그문트 프로이드, 진화론의 찰스 다윈이다. 450쪽에 달하는 짧지않은 이 책을 읽어 나가면서 '지금 하나의 유령이 유럽을 배회하고 있다. 그 유령의 이름은 공산주의이다'로 시작되는 마르크스,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을 접하면서 나는 20대 후반과 30대 초반의 피끊는 젊음을 상기할수 있었다. 전세계가 폭염이라는 이상기후에 고통받는 현실은 '침묵의 봄'의 저자 레이첼 카슨을 떠올리게 만든다. 그것은 '생태'에 대한 현대사회의 철학부재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이 땅의 막무가내 개발지상주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 4대강을 마구 파헤치면서 '4대강 살리기'라는 언어도단의 프로젝트를 강행하는 MB정권의 독선에서 '네안데르탈 시대의 생물학과 철학이라는 오만한 자연에 대한 통제'를 읽을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땅은 경제성장을 위해서라면 모든 것을 희생시킬수 있다는 즉 독재도 용납할 수 있다는 도착증 환자들의 경제성장지상주의국가다. 그런데 웬걸 '강부자' 정권답게 부동산 부양정책을 막무가내로 추진하나, 빈부격차만 커지고 있다. OECD 국가중 한국의 상대적 빈곤율은 17.5%로 가장 높고, 사회지출의 평균비용은 6.9%로 꼴찌다. 소득재분배가 엉망인 이땅에서 MB정권의 최우선 과제는 투자 활성화를 위한 감세정책이다. 즉 기득권층과 재벌에게 혜택을 주는 조세정책으로 정부의 재정부담은 보통 국민에게 돌아온다. 그렇다. 이것이 '747 공약'의 본질이다. 항아리에 물이 흘러 넘치면 가난한 자도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적하현상은 현실에서 극단적인 빈부격차로 나타날수밖에 없다. 부자들은 더 큰 항아리를 미리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의식 수준이 그런데 무슨 공공선의 '노블레스 오블리즈'를 바라겠는가. 이제 헛껍데기 경제성장 일변도의 망상에서 벗어날때도 되지 않았는가. 아파트 평수를 한평이라도 늘리겠다는 탐욕 속에 용산참사의 불타죽은 철거민의 주검이 도사리고 있는 것이다. 현실을 직시하는 교양인은 폭력을 거부하는 양심의 실천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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