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대한민국을 사색하다
지은이 : 주대환
펴낸곳 : 산책자
책을 구입하고 1년6개월만에 잡았다. 순전히 저자의 이름을 발견하고 가트에 책을 집어 넣고는 왜이리 굼뜬 책읽기가 되었을까. 주대환이라는 이름 석자를 안 것이 벌써 20여년 저쪽의 세월이다. 그시절 NL계열의 '말'지가 있었다면, 한편으로 PD계열의 '길을 찾는 사람들'이라는 월간지가 있었다. 거기서 '한국노동당(가칭) 창당 준비위원회' 중앙위원으로서의 저자의 인터뷰 기사를 접했다. 그때 나는 가리봉오거리의 벌통방에 기거하며 문래동 남부지원앞 마찌꼬바의 공돌이였다. '92년 총선 정국에서 지하 비밀조직을 해체하고 수면으로 올라온 '한국노동당'은 기존 합법공간의 민중당과 통합하고, '민중당'이라는 당명으로 제도권의 총선에 뛰어들었다. 지금 내 책장에서 가장 나이를 먹은 책은 '나는 겨울잠을 자러 들어온 곰이로소이다'로 일빛에서 '91년도에 출간된 인노련사건의 구속자 옥중편지 모음집이다. 여기 '인노련'이 '한국노동당'의 주축 세력이었다. 그때 저자는 중앙위원으로서 국가보안법으로 구속되었다. 그때 노동판에서 나돈 이야기로 비합에서 합법공간으로 올라오면서 몇명의 구속기간까지 다 합의를 보고 올라왔다는 풍문이 나돌았다. 내가 소속된 선거구는 구로병으로 위원장은 김경은이었다. 나는 철공소를 다니면서 선거운동을 도왔다. 퇴근후나 주말에 후보의 유세를 준비하거나 고작해야 팜플렛을 돌리는 것이 나의 일이었다. 다 알다시피 민중당은 무자비하게 깨진다. 그때 민중당 선거참관인으로서 나의 기억은 제법 또렷하다. 유권자의 3% 지지를 못받아 정당법에 의해 자진 해산할수밖에 없었다. 그 어려웠던 시절, '진보정당추진위원회'를 이끌고 대선을 준비한 이가 현재의 진보신당 대표 노회찬이다. 그때 민중당의 사무총장은 이재오였고, 노동위원장은 김문수였다. 무슨 말이 필요한가. 변절한 두 인물의 그 뒤 행각을. 지금도 잊어버릴 수 없는 사건은, 민중을 배신하고 보수진영에 투항한 이재오가 운동권 여학생을 성추행하는 경찰을 비호하려고 내뱉은 말이었다. '요즘 운동권 여학생은 성까지 판다'고. 그리고 아직 진보정당추진위원회 중앙위원으로서의 신지호는 기관지 '진보저널'에 실은 문건으로 조직의 토론(?)문화를 활성화시키는데 지대한 공헌을 한다. 지난 용사참사에서 불타죽은 철거민들을 향해 신지호는 '테러리스트'라고 극우 앞잡이로 총대를 메었다. 민중을 팽개친 변절자들의 언행은 극단으로 치달을 수밖에 없다. 자신의 충성심을 내보이기 위해서라도. 민중당이나 진보정당추진위를 떠나 극우보수 진영에 안착한 그들의 개인영달에 대한 꿈은 오히려 과거가 거추장스러웠을 것이다. 어쨋든 나는 대선정국을 맞아, 다니던 마찌꼬바를 그만두고 상계동 미도파백화점 신축공사 현장의 노가다에 뛰어들었다. 그때 노가다를 같이 한 동료는 지금 진보신당 서울시당위원장을 맡고있다. 독자후보 세력은 대선후보로 백기완을 내세웠다. 선거자금 부족으로 진보진영은 애를 태우고 있었다. 그때 동료들은 결혼반지를 팔거나, 전세를 월세로 내려 앉았다. 가리봉오거리의 남부선거대책본부에 배속된 나에게 잊혀지지 않는 추억 한가지가 있다. 그때 고맙게도 서울대 학생 50여명이 선거운동 지원을 나왔다. 노동자를 조장으로 학생 3명이 1개조로 묶인 팀은 달랑 반코팅 장갑을 지급받고 야간 현수막 게첨에 나섰다. 내가 맡은 구역은 독산동 우시장 일대였다. 학생들의 전공은 수학으로 2학년이 1명이었고, 신입생이 2명이었다. 나는 속으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래도 이 친구들이 이 땅의 최고 수재아니던가. 현수막을 다는 작업은 너무 열악했다. 할수 없었다. 8차선을 가로 지르는 건너편 전봇대를 내가 맡았고, 신입생 2명은 차의 통행을 수신호로 가로 막았다. 기호 8번 백기완의 상징은 장산곶매였다. 이빨로 현수막 끈을 물고, 한발한발 전봇대를 올라 가자면 한겨울 삭풍으로 장갑이 시멘트에 쩍쩍 달라붙었고, 고압선은 살벌하게 울어댔다. 새벽 3시가 되도록 고작 4개의 현수막을 달고, 우시장에서 소고기 국밥으로 얼은 속을 채우고 사무실로 돌아왔다. 다행이 선거운동원은 모두 무사했다. 하늘이 도운 것이 틀림없었다. 돈으로 메닥질을 치던 정주영 국민당 후보의 현수막을 달던 일용노동자가 전기 감전사로 죽던 날이었다. 여지없이 박살난 진보진영은 허탈감에 추스릴 기운도 없었다. 나는 다시 현장을 꿈꾸며, 어용노조가 판치던 ○ ○ 건설 직업훈련원에서 중장비 운전을 배우다, 다리가 부러지는 불상사를 당했다. 진보정당 동료들의 충고를 못이기는 척 받아들여 나는 패잔병 몰골로 시골로 낙향했다. 이처럼 동토의 왕국에서 진보진영의 현실 정치는 악전고투하고 있었다. 그런데 21세기 들어 '국민승리 21'을 기반으로 민주노동당을 창당하여 10명의 국회의원을 배출한 진보진영의 이론가가 바로 이 책의 저자인 주대환이다. 민노당의 정책위의장이었던 그의 지금은. 민주노동당은 분당되었다. NL진영을 종북주의자로 비판하던 저자는 PD진영인 진보신당도 아닌 무소속으로 지난 총선에 창원지역구 후보로 출마했었다. 총선이후 전국(남원, 무주, 지리산, 강원도, 한강, 낙동강 등)에 흩어져있는 옛 동지들의 살아가는 모습에서 이 땅 대한민국의 건강함을 회복하는 한줄기 희망을 보고자 애쓴다. 그것이 저자가 부르짖는 '신노선'으로 토종 좌파에 희망을 걸면서 '사회민주주의'가 진보세력의 희망이라고 말한다. 그런데 '대한민국 건국의 긍정'을 얘기하는 그의 발언은 뉴라이트와 일맥상통한다. 하긴 저자가 말하는 신노선은 '뉴레프트'다. 닮은꼴로 바라보는 내가 너무 민감한 것인가. 좌우를 극에서 극으로 우왕좌왕하는 이 땅의 선배 진보주의(?)자들의 새로운 노선에 나는 학을 띠었는지 모른다. 더 두고봐야겠다. 이건 또다른 메시아의 도래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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