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늑대
지은이 : 전성태
펴낸곳 : 창비
책 표지에 기울인 정성이 역력하다. 그믐달을 바라보며 늑대가 허공을 향해 울부짖는다. 나는 책 이미지를 보며 자연스레 몽골인의 민족신화를 떠올렸다. 푸른늑대(버르테 치도)와 하얀 암사슴(코아이 마랄) 사이에서 최초의 인간 '바트 차강'(힘세고 하얀 사람)이 태어났다. 이가 바로 몽골인의 시조다. 우리 민족의 시조인 단군왕검이 하늘의 아들과 곰 사이에서 태어나듯이, 몽골인은 늑대와 사슴의 후손이다.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제국을 이룩한 칭기즈칸의 군대를 '푸른 늑대'라고 하지 않던가. 그렇다. 소설집 '늑대'에는 총 10편의 소설이 실려 있는데, 그중 6편이 몽골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작가는 실제 6개월간 몽골 생활을 했다. 그 느낌과 분위기가 살아있는 작품을 만들었을 것이다. '목란식당', '늑대', '남방식물', '코리언 쏠저', '두번째 왈츠', '중국산 폭죽'이 몽골을 배경으로 한 작품으로 신자유주의가 세상을 말아먹은 현재의 각종 모순인 남북, 이주노동자, 혼혈 문제가 독자들에게 무거운 문제의식을 던져준다. 이외 '강을 건너는 사람들'은 참담한 탈북자들의 상황과 심경을 그렸고, '누구 내 구두 못봤소?'는 비극적인 이산가족의 삶을 다루었고, '아이들도 돈이 필요하다'는 작가의 성장 자전소설로 보여지고, '이미테이션'은 혼혈에 대한 이 땅의 웃지못할 사회적 편견을 다룬다. 소비에트와 동유럽의 '붉은 유령'이 물러나면서 시원의 광대한 초원은 '무시무시한 검은 혓바닥'으로 표현되는 신자유주의라는 절대자본주의 물결에 휩싸인다. 작가는 표제작 '늑대'에서 화자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한잔 수태채가, 게르에서 하룻밤 잠이 돈으로 계산되었습니다. 장작을 패는 노동이, 늑대를 쫓는 동행이 벌이가 되었습니다. 그뿐입니까. 게르 천장으로 빛나는 별과 스미는 달빛이, 지나는 바람과 흩날리는 눈이 역시 돈의 현영처럼 손님들을 끌어왔습니다.'
얼마전 가트에 넣어둔 책을 구입하고는, 아쉬움에 무릎을 나도 모르게 쳤다. 그것은 전성태의 산문집 '망태 성태 부리붕태'를 놓쳤기 때문이다. 책읽기는 더딘데 책욕심은 많아, 마음에 드는 신간서적을 자꾸 끌어들이다보니 책장만 넘쳐났다. 그래 마음을 다졌다. 쌓여있는 책을 모조리 읽고, 그 되새김 글을 블로그에 올리자. 그리고 차후에 책에 눈길을 주자. 1년 반을 기다려야만 했다. 할수없이 작가의 신간인 첫 산문집을 가트에 던져 넣었다. 그만큼 나는 이 시대의 최고 젊은 작가로 전성태를 손꼽는다. 문학평론가들이 말하듯이 '2천년대의 젊은 소설의 가능성'을 작가에서 찾았기 때문일까. 그런 안목이 내게는 없다. 다만 약자에 대한 작가의 진솔한 애정에 믿음이 가기 때문이다. 사회의 진보에 대한 믿음이 산산조각나고, 파렴치한 신자유주의가 가난한 민중의 삶을 목조를 때, 대부분의 작가들은 거추장스런 이상을 향한 이념을 벗어던지고, 개인의 일상에 안주했다. 그리고 '예술을 위한 예술'을 부르짖었다. 나는 그 가벼움에 진저리를 쳤다. 그러고보니 내가 책으로 접한 작가는 꽤나 세월이 묵었다. 첫소설집 '매향(埋香)'은 우연치않게 손에 넣었다. 그시절 나는 답사의 재미에 빠져들어, 몇군데 '매향비'를 찾아다녔다. 그때 눈에 뜨인 소설집이다. 책씻이한 책은 직장 동료의 생일 선물로 주었다. 두번재 소설집 '국경을 넘는 일'과 '늑대'가 나란히 어깨를 겯고 책장에 꽂혀있다. 그리고 작가의 유일한 장편소설인 '여자 이발사'는 아직 마음에 담아두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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