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식물의 정신세계

대빈창 2010. 8. 16. 07:14

 

 

책이름 : 식물의 정신세계

지은이 : 피터 톰킨스·크리스토퍼 버드

옮긴이 : 황금용·황정민

펴낸곳 : 정신세계사

 

이 책을 구입하게 된 것은 법정스님의 열반 때문이었다. 예전에 스님의 '무소유'와 '홀로 사는 즐거움'을 잡았고, 작년 '아름다운 마무리'를 손에 넣었으나, 아직 책을 잡지는 못햇다. 그런데 돌연 스님이 열반에 드셨다. 1년 평균 독서량이 1권 미만이던 한심한 이 땅에 스님의 저작물이 동이 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했다. 심지어 절판된 스님의 '무소유'는 인터넷 경매에서 천정부지의 가격을 호가하고 있었다. 정말! 목불인견의 천민근성이 노골적으로 드러난 순간이었다. 스님은 이런 현상을 예견하셨을까. 자신의 모든 출판물을 절판하라는 유지를 남기셨다. 그런데 출판사 측들은 이런 변명을 내세웠다. '스님의 뜻을 이어 받으려는 독자를 위해서라도 책은 계속 출판되어야 한다'고. 정말 그럴까. 스님의 뜻보다는 돈 냄새에 회가 동한 것이 사실일 것이다. 스님의 생태주의적 무소유 삶을 실천하기 보다는 희귀본이 된 '무소유'로 소유욕을 채우는데 이 사회는 들떠 있는 것이다. 뒤이어 '법정스님의 내가 사랑한 책들'이라는 두터운 책이 출간되었다. 목차를 살피니, 다행히 내 책장에는 스님이 권한 책들이 거의 꼿혀 있었다. 하지만 책에 대한 못 말릴 '강박적인 편집증'은 어쩔 수 없었다. '풀들의 전략', '농부 철학자 피에르 라비', '여기에 사는 즐거움', '행복의 정복'과 이 책을 가트에 넣었다. 그리고 언제나 게으른 나는 스님이 사랑한 50권의 책 중 뒤미처 구입한 5권의 책 중에서 가장 부피가 두터운 '식물의 정신세계'를 펼쳤다. 그런데 생각보다 진도가 더디었다. 자칭 초보 생태주의자로서 관심이 쏠릴만한데 450여쪽의 책씻이에 무려 20여일이 소요되었다. 그리고 되새김글의 서두부터 글줄이 막막하다. 할수없이 책을 손에 넣게 된 내력부터 억지로 끌어낸다. 도대체 이유가 무엇일까. 무늬만 생태(?)주의자인가. 사유방식은 유물론자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한 것은 아닐까. 즉 모든 생명체가 물리적 구조를 바꾸기 위해서는 죽어서 다른 화학물질로 변해야만 한다는 단선적 사고에서 나는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또한 제도권 교육을 통해 전문화되고 세분화된 현대 과학의 세례를 받은 자로서 생명에 대한 종합적인 시야의 결여가 원인일수도 있겠다.

1970년대에 미국에서 처음 발행되었고, 1990년대에 이 땅에 모습을 드러낸 책을 나는 2010년도에 읽는다. 책의 부제는 '식물도 생각한다'다. 식물은 단순히 살아 숨쉴 뿐 아니라 영혼과 개성을 지닌 생명이라고 이 책은 강조한다. 식물 정신세계에 대한 연구는 1966년 미국 뉴욕의 거짖말탐지기 검사전문가에 의해 시작되었다. 엉뚱한 백스터는 사무실의 관엽식물에 거짖말탐지기를 들이댔다. 그런데 거짖말처럼 식물이 반응하는 것이 아닌가.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의식의 기능이 있다. 물질의 의식을 부정하는 것은 인간의 독선 때문이다'라는 결론을 내리게 만든 일련의 실험결과를 '백스터 효과'라고 그의 이름을 따 명명했다. 식물은 곤충과 함께 지구상 생물 가운데 3/4를 차지한다. 그에 대한 인간의 연구는 이제 시작에 불과하다. 그만큼 식물의 생존메커니즘은 아직 비밀의 베일에 쌓여있다. 지구상에 식물은 동물보다 더 먼 오랜전에 나타났다. 그것은 식물이 주위의 환경을 인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각능력없이는 현실에 적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언젠가 들은 풍문으로 농촌진흥청에서 작물에 음악을 들려주는 연구를 했다고 한다. 결과는 놀랍게도 바하나 헨델의 클래식을 들은 무우는 우람하고 뿌리도 곧게 내렸는데 반해, 헤비메탈을 들려 준 무우는 흔히 미친 무우라고 불리는 현상이 일어났다고 한다. 사람도 마찬가지일까. 괜히 두려운 생각이 든다. 질풍노도의 시기, 헤비메탈에 나는 광적으로 빠져 있었다. 하긴 단순하게 생각해도 덩굴손을 가진 식물의 자라는 모습을 지켜보면 신묘하기 그지없다. 정확하게 잡을거리가 있는 허공으로 덩굴손을 뻗기 때문이다. 이런것을 식물의 지각능력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식물들의 용도나 종별, 구조, 생리, 지리적 분포'같은 식물학 본연의 학문을 추구하는 이 책에 등장하는 비주류 과학자 중에서 나의 뇌리에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 학자는 흑인 농화학자 조지 워싱턴 카버다. 그는 발명왕 토머슨 에디슨과 자동차왕 헨리포드의 천문학적 액수를 들이민 스카우트 제의를 일거에 거절했다. 그는 정직한 과학에 대한 자신의 철학을 이렇게 얘기했다. '자신의 정신에서 비롯된 산물은 그것이 아무리 값비싼 가치가 있다 하더라도, 인류에게 무료로 제공되어야 한다.' 자본의 노예가 된 이 시대의 과학자들이 가슴에 새겨들어야 할 명제다. 몬산토, 카길 등 다국적곡물기업의 돈에 팔려 생명공학을 빙자한 유전자조작식품으로 제3세계 민중들을 죽음으로 내모는 그들의 파렴치한 생물학 연구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멀리 갈것도 없다. 무지몽매한 국수주의적 좀비들을 등에 없고 진실과 정의를 팔아먹은 황우석 사태가 이땅의 현실을 말해주고 있지 않은가. '인간의 얼굴을 한 과학'이  발 붙일수 없는 이 시대의 몰골이 처참할 수밖에 없다. 신자유주의가 강제하는 무한경쟁은 생존의 바닥에서 허덕이게 몰아 붙인다. 먹고 살기에도 정신 못차리는데 이런데까지 신경을 써야 하는가. 그렇다. 무지로는 개미지옥에서 벗어날수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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