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사람이 뭔데

대빈창 2021. 6. 9. 07:00

 

책이름 : 사람이 뭔데

지은이 : 전우익

펴낸곳 : 현암사

 

『혼자만 잘 살믄 무슨 재민겨』(1993), 『호박이 어디 공짜로 굴러옵디까』(1995), 『사람이 뭔데』(2002). 농부·재야사상가 전우익은 2004년 향년 79세로 영면하셨다. 선생이 돌아가시고 15여 년이 훌쩍 건너뛴 지금 선생의 책을 잡기 시작했다. 선생의 지혜가 깃든 세 권의 책에서 첫째 권은 개정증보판을, 셋째 권은 다행히 아직 살아있었다. 품절된 둘째 권의 판본이 새로 나오기를 나는 기다리고 있다. 책은 12개의 꼭지와 14편의 토막글, 주명덕 선생의 흑백사진 34장이 실렸다. 편지 형식의 글들은 나무 키우는 재미, 흙·나무·숲을 등진 도시인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 존경하는 인물, 좋아하는 작가와 작품에 대한 이야기였다.

표지사진 선생은 얼굴 가득 주름살이 일렁였다. 나는 이 땅의 가혹한 현대사를 정면 돌파한 선생의 신산함 삶이 새겨진 모습으로 보았다. 선생은 경북 봉화 상운면의 500년간 마을을 이어 온 옥천 전씨 집성촌 귀내龜川(거북의 등처럼 생긴 바위가 냇가에 있는) 마을의 옛집에 살았다. 조선 중종 때 야옹野翁 전옹방(1493 - 1556)은 벼슬을 하지 않고 귀내에서 야인으로 학문을 닦았다. 선생 가문의 법도는 권세와 부귀를 천하게 여기고, 자연의 순리에 따라 사는 것이었다.

1925년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난 선생은 해방정국에서 〈민주청년동맹〉 활동으로 1년3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예비 검속으로 다시 6년을 구금당했다. 선생은 1988년까지 보호관찰 대상자로 주거 제한을 받아 고향에 유배되었다. 선생은 공권력을 피해 찾아드는 운동권 학생들을 기꺼이 받아주어 봉화경찰서 유치장의 단골손님이었다.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의 문부식과 김현장도 숨어 들었다. 운동권 학생들과 문인 그리고 종교인들에게 대문을 활짝 열어주었다. 가난한 이웃들은 수시로 연장과 도구를 빌리러 선생 집을 오고갔다. 선생의 몸은 고택에 유배되었으나, 영혼은 온전히 자유로웠다.

할아버지 대부터 살던 낡은 기와집에 선생은 홀로 자급자족하며 살았다. 3남3녀의 자식들은 모두 외지로 나갔고, 아내도 오래 전에 세상을 떠났다. 선생은 골방 네 벽면을 책꽂이 하나 없이 책더미로 가득 메우고 농사를 지으며 공부를 하고 글을 썼다. 독재 정권의 탄압을 정면으로 이겨내며 자신의 신념에 따라 옹골차게 삶을 꾸렸다. 예비범죄자로 낙인 찍혀 구금을 당하는 굴곡진 시대를, 자연과 더불어 노닐다가 저 세상으로 가셨다.

선생은 말씀하셨다. “난 신영복 선생이 글 쓰고 강의하는 건 대단해 보이지 않는다. 아직도 손수 빨래하고 일하는 게 대단해 보이는 거지. ··· 다들 입만 있지 귀가 없어. ··· 난 젊은 나이에 학생 운동하는 거 좋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요새는 세상만 바꾸려고 난리지. 좀처럼 자신은 변화하지 않으려 해. 자신을 먼저 깨고 바꿔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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