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쏘가리, 호랑이
지은이 : 이정훈
펴낸곳 : 창비
신간 시집을 검색하다, ‘초판 한정 어나더커버’에 눈길이 끌렸다. 파란 바탕의 무늬는 사막의 모래주름이거나 백사장으로 밀려드는 바다물결처럼 보였다. 시집을 덮으며 나는 쏘가리가 사는 여울의 급물살로 단정 지었다. 시인은 201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40대에 등단했다. 심사평은 이랬다. “요즘 우리 시단에서 보기 힘든 신화적 상상력의 눈부신 질주를 보여준다. 그 상상력은 강물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를 산맥을 치달리는 호랑이로 치환시키는 마법을 가능케 한다. 우리 민족 고유의 향토적 풍광을 배경으로 펼쳐지는 이 시는 마치 이 땅에 산업사회가 도래한 적이 없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언어의 구체성과 밀도를 획득하고 있다.”
7년 전 등단작을 표제로 내건 첫 시집이었다. 5부에 나뉘어 52 시편이 실렸고, 해설은 시인 황규관의 「‘쏘가리-되기’와 ‘강’의 현실」 이었다. 등단시 20년차 화물 트레일러 운전사라는 이력이 화제가 되었다. 이제 28년차 화물트럭 운전사 시인은 공공운수노조 화물연대본부 조합원이었다. 4부에 실린 시들은 ‘길 위의 시인’으로 떠돌아다니는 노동현장에서 길어 올린 시편들이었다. 나의 눈에 익숙한 80년대 노동시들처럼 노동 현실을 격정적으로 비판하거나 목소리를 높이는 시편을 찾을 수 없었다. 시인의 생업 화물차 운전에서 우러나온, 노동하는 삶의 단면과 노동자들의 일상을 섬세한 관찰력과 핍진한 묘사와 비유로 선명하게 드러냈다.
쏘가리는 육식성 대형 어종이다. 물이 맑으며 큰 자갈이나 바위가 많고, 물살이 빠른 큰 강 중류에 살며 바위나 돌 틈에 잘 숨는다. 몸 색깔은 황갈색 바탕에 둥근 갈색 반점(표범무늬)이 흩어져 있다. 작은 물고기, 수서 곤충류, 갑각류 등 살아있는 물고기만을 잡아먹는다. 황쏘가리는 천연기념물 제190호이다.
내가 작살을 움켜쥐어 물속 산맥을 타넘으면 / 덩굴무늬 우수리범이 / 가장 연한 물살을 꼬리에 말아 따라오고 / 들판을 걸어가면 구름무늬 조선표범이 / 가장 깊은 바람을 부레에 감춰 끝없이 달려가고
등단작이면서 표제시 「쏘가리, 호랑이」(34 - 35쪽)의 일부분이다. 「돌나리」(24쪽)는 멸종위기종 꾸구리의 방언이었다. 나는 시편의 쏘가리를 생각하며 산간벽지의 일급수 계류에 사는 물고기를 떠올렸다. 그리고 책장의 같은 평창 출신의 시인 김남극의 『하룻밤 돌배나무 아래서 잤다』로 눈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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