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대빈창 2021. 12. 15. 07:30

 

책이름 :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

지은이 : 한강

펴낸곳 : 문학과지성사

 

내가 읽은 한강(韓江, 1970 - )의 첫 작품은 『84 신춘문예 당선작품집』(소설문학사)에 실린 〈서울신문〉 신춘문예 소설당선작 「붉은 닻」이었다. 당선소감에서 시집에 실린 「오이도烏耳島」(130쪽)의 갯벌에 처박혀 녹슬어가던 닻을 본 것도 같았다. 『당선작품집』을 80년대가 다 저물어갈 때 뒤적거렸다. 30년이나 묵은 기억을 믿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작가의 작품이 다시 눈에 뜨인 것은 『2005년 이상문학상 수상작품집』의 대상 수상작 「몽고반점」이었다.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으로 이루어진 연작·장편소설 『채식주의자』가 3대 세계문학상의 하나인 맨부커 인터내셔널상을 2016년에 수상했다. 작가는 일약 세계적 중심부로 발돋움했다. 5·18 광주민중항쟁을 다룬 『소년이 온다』와 ‘휜 것’을 통해 연상되는 인간의 삶과 죽음을 그린 새로운 형식의 ‘시 소설’ 『흰』을 연이어 잡았다. 사회학자 김호기는 한강의 문학 세계를 이렇게 평했다. “폭력적 규율을 재생산하는 우리 시대에 대한 비판적 반성과 성찰적 모색을 촉구”하고 있다.

조연정 문학평론가는 해설 「개기일식이 끝나갈 때」에서 이렇게 말했다. “한강의 감각적인 문장이나 그녀가 그려내는 강렬한 이미지에 매혹된 우리는 그녀의 소설에 언제나 시적이라는 수식어를 붙여왔다.······ 한강의 소설에 등장하는 수많은 그림의 실재가 궁금했던 사람들은 이제 시집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펼치면 된다.” 대중에게 소설가로 각인된 작가 한강은 소설에 앞서 1993년 『문학과 사회』 겨울호에 「서울의 겨울」등 4편의 시를 발표하며 시인으로 데뷔했다.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문학과지성사, 2013)는 그동안 쓴 시 120편중에서 60편을 골라 묶었다고 한다. 문예지에 발표된 10여 편을 제외하면 전부 미발표시였다. 시인으로 등단한 뒤 20년 만에 첫 시집을 내놓은 것이다.

표제를 제목으로 단 시는 없었다. 부제가 ‘유리창’인 「저녁의 소묘 3」의 4연이,

 

(이런 저녁 

내 심장은 서랍 속에 있고)

 

였다. 두 편의 시 제목에 나오는 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03-1970)는 러시아 출신의 미국 화가로 추상 표현주의, 색면 추상화가를 대표하는 화가였다. 마지막은 시집을 여는 첫 시 「어느 늦은 저녁 나는」(11쪽)의 전문이다.

 

어느 / 늦은 저녁 나는 / 흰 공기에 담긴 밥에서 / 김이 피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었다 / 그때 알았다 / 무엇인가 영원히 지나가버렸다고 / 지금도 영원히 / 지나가버리고 있다고 // 밥을 먹어야지 // 나는 밥을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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