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윤이상, 상처 입은 용
지은이 : 윤이상·루이제 린저
펴낸곳 : RHK
“어느 날 은퇴해 고향으로 돌아가 그저 조용히 바닷가에 앉아 물고기를 낚고 음악을 들으면서 (···) 내 몸을 뉘었으면 합니다. 또 나는 그 땅에 묻히고 싶습니다. 내 고향 땅의 온기 속에 말입니다.”(21쪽) 세계적인 음악가 윤이상(尹伊桑, 1917 - 1995) 선생은 죽어서 어린 시절을 보냈던 통영에 묻히기를 바랐다. 수치스러운 어리석음에 매몰되었던 이 땅의 현대사는 현대음악가 5대 거장의 소박한 소망마저 들어주지 못했다.
선생은 사후 23년이 지나서야 2018년 3월 20일 독일 베를린 슈판다우 가토우 묘역을 떠날 수 있었다. 선생의 묘는 통영 바다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미륵도 서쪽 언덕에 안장되었다. 2017년 7월 독일에서 있었던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에 참석한 문재인 대통령과 동행한 김정숙 여사는 故 윤이상 선생의 묘소를 참배했다. 경남 통영에서 옮겨 온 동백나무를 심는 것을 보며, 나는 ‘동베를린(동백림) 간첩단 사건’을 떠올렸다.
1967년 7월 8일 중앙정보부(KCIA)가 발표한 사건은 작곡가 윤이상, 이응로 화백, 천상병 시인 등 194명이 연루된 역대 최대 규모의 간첩단 사건이었다. 박정희 독재정권은 1967년 6월, 작곡가를 납치하여 한국으로 끌고왔다. 서독주재 대사관의 비좁은 다락방에 가두고, 라디오 볼륨을 최대한 높여 귀청을 찢을 듯한 소음 고문을 자행했다. 선생은 KCIA 본부 고문실에서 통나무로 몸이 짓이겨지고, 물고문을 수차례 당하면서 죽음을 예감했다. 고문의 고통으로 자살을 시도했다. 고문실의 무거운 금속제 재떨이로 자신의 후두부를 내리쳤다. 선생 뒷머리의 커다란 상흔은 고문실의 굴욕, 고통, 절망을 말해주고 있었다.
선생은 1심 재판에서 사형이 구형되었고, 무기징역이 선고되었다. 3심에서 10년으로 감형되었다. 부인 이수자 여사는 남편보다 이틀 뒤에 납치되었다. 남편이 부른다고 속여 서울로 끌고 왔다. 3년형을 선고받은 보호관찰이었다. 그녀는 6개월간 투옥되었다. 윤이상의 투옥 소식에 161명이 넘는 세계적인 음악예술가와 동료들이 구명운동에 나섰다. ‘20세기 주요 작곡가 56인’에 빛나는 음악가의 꿈과 희망을 꺾으려던 박정희 군사독재의 마수가 꺽였다. 2년간 복역중인 선생을 독일로 추방시킬 수밖에 없었다.
루이제 린저(Luise Rinser, 1911 - 2002)는 독일 작가로 나치 정권에 저항하여 사형선고까지 받은 진보적 지식인이었다. 88년도에 나온, 아무 이념적 편견없이 사실 그대로를 기술한 『북한 이야기』로 잘 알려졌다. 그녀는 1977년 독일에서 『윤이상, 상처 입은 용Der verwundete Drache』를 최초로 출간했다. 박정희 쿠데타 정권의 야만적인 고문조작 간첩단 사건을 전 세계에 폭로했다. 책은 윤이상 탄생 100주년을 맞아 재출간되었다.
루이제 린저는 서문에서 말했다. “우리들의 절박한 목적은 작곡가 윤이상에 대해 쓰는 것이 아니고 독재 체재에 의해 자유를 빼앗긴 한 예술가, 그리고 그런 운명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과 운명을 함께한 하나의 모델이자 증인이며 고발자인 한 예술가에 대해 쓰는 것”이라고. 책은 윤이상 선생을 뱄을 때 어머니가 꾼 태몽에서 시작되었다. 지리산 위 구름 속에서 용이 날고 있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용은 상처를 입어 하늘까지 높이 차고 오르지 못했다. 어머니가 꿈속에서 보았던 상처 입은 용은 조국과 민족을 사랑했다는 죄로 고난의 길을 걸어야만 했던 선생의 앞날에 대한 예언몽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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