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내가 가장 젊었을 때

대빈창 2022. 2. 18. 07:30

 

책이름 : 내가 가장 젊었을 때

지은이 : 유용주

펴낸곳 : 시와반시사

 

‘다만 공부를 못해서 한탄할 뿐이다. 지금은 겸손에 대해서 배우고 있다. (···) 좋은 작품은 고독해야 나오는 법이다.’ 장수 자리골에서 쓴 |자서|의 일부분이다. 시인은 2011년, 40년 만에 고향 전북 장수에 돌아왔다. 노가다 시인은 14살 때부터 학교에 가지 못하고, 사회 밑바닥 생활을 전전했다. 1979년 정동 제일교회 〈배움의 집〉에서 詩를 처음 접했다. 1991년 『창작과비평』 가을호에 「목수」외 시 두 편을 발표하며 문단에 나왔다. 고향으로 돌아 온 시인은 글을 쏟아냈다.

산문집으로 『그 숲길에 관한 짧은 기억』(작은것이아름답다, 2014), 『여기까지 오느라 고생 많았다』(걷는사람, 2018). 시집으로 『서울은 왜 이렇게 추운 겨』(문학동네, 2018), 『어머이도 저렇게 울었을 것이다』(걷는사람, 2019), 『내가 가장 젊었을 때』(시와반시사, 2021). 소설집으로 『죽음에 대하여』(도서출판b, 2020). 나는 진즉에 두 권의 산문집을 손에 넣었다. 낯선 출판사 〈시와반시사〉를 보며 잠시 「喪家에 모인 구두들」의 시인 유홍준을 떠올렸다. 나는 세 권의 시집에서 『내가 가장 젊었을 때』를 선했다.

시집은 ‘시와반시 기획시인선 020’으로 출간되었다. 시집 시리즈는 편집에 많은 공을 들였다. 반양장본의 앞표지 안쪽에 시인의 모습과 그동안 펴낸 책과 수상이력, 그리고 |자서|가 쓰였다. 뒤표지 안쪽은 기획시인선 시리즈의 시인 반명함 사진과 시집을 순번대로 나열했다. 『내가 가장 젊었을 때』는 4부에 나뉘어 62시편이 실렸다. 해설·발문이 없는 대신 시인의 산문 「내 영혼을 뒤흔든 한 편의 시」가 실렸다. 뒤표지에 시인 복효근의 표사가 실렸을 뿐이다.

시인이 아끼는 문인 이면우, 박남준, 정낙추, 안상학, 이정록, 한창훈 등으로 유추되는 인물들이 시편에 등장했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거문도」(12-13쪽)의 부제 ‘최경엽 할머니께’는 거문도출신 소설가 한창훈의 외할머니였다. 「르포」(54-55쪽)의 소설가 K선생은 김성동 선생이 분명했다. 나는 얼마 전 선생의 자전소설 『민들레꽃반지』를 잡았다. 마지막은 시인의 눈물 겨운 밑바닥 생활을 그려 낸 「개그 콘서트」(88-90쪽)의 1·2·4·5·7·10연이다.

 

늬들이 / 가스통 바슐라르를 배울 때 / 20킬로 가스통을 둘러업고 계단을 올랐다 / 가스통보다 무거운 산소통을 들고 뛰었다. // 늬들이 / 자끄 데리다를 배울 때 / 자끄(지퍼) 달린 바지를 데렸다 / 자끄 달린 잠바를 데렸다 // (···) // 늬들이 / 자끄 라깡을 읽을 때 / 나는 노깡을 묻었다 / 물이 나올 때까지 흙을 파냈다 / 그렇게 물의 뿌리를 파냈다 / 두레박에 떠서 올린 우물물은 차고 달았다 // 너희들이 E. H. 카를 읽을 때 / 나는 세차장에서 차를 닦았다 / 거품을 내고 고압 물을 뿌렸다 / 인생 자체가 거품이란 걸 그때 깨달았다 // (···) // 늬들이 / 칼 포퍼를 공부할 때 / 나는 일곱 개나 되는 칼을 갈았다 / 어두운 주방에서 두 개의 숫돌을 번갈아 쓰며 칼을 갈았다 / 이를 갈며 인생을 저주했다 // (···) // 너희들이 칼 융을 공부할 때 / 나는 구두코를 융으로 광을 냈다 / 찍새가 되어 빌딩을 날아 다녔다 / 딱새가 되어 둥우리에 남아 구두를 닦았다 / 반짝이는 너희들 삶을 위해 / 손톱에 새까맣게 구두약이 끼는 줄도 모르고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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