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지은이 : 정희진
펴낸곳 : 교양인
평화학·여성학 연구자 정희진의 『페미니즘의 도전』(교양인, 2005)을 잡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생각했다. 연이어 네 권의 단행본을 잡았다. ‘정희진의 글쓰기’ 시리즈 두 권이 동시에 나왔다. 1권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기 위해서 쓴다』, 2권 『나를 알기 위해서 쓴다』. 책은 어떻게 글을 읽을 것인가에 관한 정희진식 방법론 『정희진처럼 읽기』와 우리 시대를 특징짓는 주된 사건들을 ‘여성’의 눈으로 재해석한 『낯선 시선』의 통합적 버전이었다.
글을 쓰는 이유는 대부분 네 가지로 구분될 수 있다. 자신을 돋보이게 하려는 욕망과 미학적 열정, 역사에 무엇을 남기려는 의지, 정치적 목적이었다. 정희진은 말했다. “나는 모두 아니다. 나는 승부욕이다. 나는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그의 글쓰기는 약자의 시선으로 타인과 사회를 탐구하고 새로운 세계를 모색하는 과정이었다. 폭력을 쓸 수 없는 약자의 무기로 그는 품위를 지키려 글쓰기를 선택했다.
3 - 4쪽 분량의 글 65편이 3장에 나뉘어 실렸다. 1장은 글쓰기에서 윤리학(문장력)과 정치학(상대를 설득하는 기술)이 구현되는 방식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글들을 담았다. 2장은 여성, 장애인, 암환자, 치매 노인 등 사회적 약자의 ‘자기 현실 쓰기', 즉 자기 위치를 자각한 당사자의 글쓰기가 지닌 힘을 보여주는 글들이었다. 3장은 이 시대에 ‘세월호'에 대해 쓴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 의미를 찾고자 한 저자의 치열한 고민이 담긴 글들을 모았다.
여성학자가 읽은 책과 글들은 『구약성서』, 『신약성서』, 『수타니타파』 등 경전에서, 백기완·김종률의 〈임을 위한 행진곡〉, 노무현 전 대통령의 유서까지를 총망라하는 전방위적 책읽기였다. 3장은 ‘세월호’ 이후의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과 부끄러움에 대해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그는 말했다. “고난을 견디는 능력은 인간의 본성이 아니다. 타인의 고통을 위로하고 공감하는 사회에서만 가능하다. 피해자와 잠재적 피해자들의 상부상조와 이를 지지하는 사회. 이것이 정의다.”(180쪽)
창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 (···) //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 보내주신 학비 봉투를 받아 // 대학 노—트를 끼고 / 늙은 교수의 강의 들으러 간다. // (···) // 인생은 살기 어렵다는데 / 시가 이렇게 쉽게 씌어지는 것은 / 부끄러운 일이다. // (···)
윤동주의 「쉽게 씌어진 詩」의 부분이다. 이어 이렇게 붙였다. ‘이 표현이 나오기까지 그의 몸은 얼마나 부대꼈을까. 고통과 고뇌, 분노와 죄의식······. 삶이 어려운 사람은 몸에서 글이 나온다. 고뇌, 생각, 언어가 서로 발효하는 것이다.’(171-17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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