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그대 불면의 눈꺼풀이여

대빈창 2022. 2. 25. 07:30

 

책이름 : 그대 불면의 눈꺼풀이여

지은이 : 이원규

펴낸곳 : 역락

 

출판사가 생소했다. 도서출판 《역락》이 펴내는 오후시선은 현재(21. 12) 열권까지 발행되었다. 시리즈는 시선-01 복효근 시, 유운선 사진의 『고요한 저녁이 왔다』에서, 시선-10 한국·인도네시아 5인 시집 『라라 종그랑 Lara Djonggrang』까지. 시인 이원규가 시를 쓰고 사진을 찍은 『그대 불면의 눈꺼풀은』은 시선-03으로 초판1쇄가 19. 6.에 발행되었다.

“지리산은 내 인생의 가장 큰 선물이었다. 어느새 입산 21년차를 맞았느니 ‘나 여기 잘 살아있다’고 부표浮漂하나 띄우고 싶었다.” 시인은 11년 만에 신작 시집을 연이어 내놨다. 나는 일곱 번째 시집 『달빛을 깨물다』(천년의시작, 2019)를 먼저 잡았다. 여섯 번째 시사진집 『그대 불면의 눈꺼풀이여』는 4부에 나뉘어 51 시편·사진이 실렸다. 22.5*15 크기는 신국판을 뉘어놓은 판형이었다. 가로로 긴 책장을 넘기면 왼쪽에 사진, 오른쪽에 시를 실었다.

시인은 지난 10년 간 지리산, 낙동강 도보순례 3만 리를 걸으며 생명평화운동을 벌였다. 모터사이클을 타고 지구둘레 27바퀴에 맞먹는 100만㎞를 달렸다. 4대강 순례, 탁발 순례, 삼보일배, 오체투지의 10년 순례 끝에 결핵성늑막염을 얻었다. 구름과 안개 속에 가린 야생화 사진작업을 7 - 8년 하고나니 ‘별나무’가 보였다. 밤하늘 가득한 별무리와 산속 토종나무를 함께 찍는 사진이었다. 사진 한 컷 건지기 위해 밤을 꼬박 새우며 몇 시간씩 기다렸다. 꽃피는 시기와 달빛의 밝기, 은하수의 위치 등이 두루 맞아 떨어져야 얻을 수 있는 이미지는 한 나무를 3년에서 5년에 걸쳐 찍어야 한 번 성공할 수 있었다. 표지그림이 '별나무' 이미지였다.

시인은 섬진강 건너 백운산 매화마을 인근에 삶터  ‘예술공간 몽유夢遊’를 꾸렸다. 시사진집은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었다.’ 제본이 어설펐다. 103쪽(왼편)의 사진을 보고, 오른편의 시로 눈길을 돌리자 난데없이  ‘책값은 뒤표지에 있습니다. 잘못된 책은 바꿔드립니다.’가 나타났다. 그것도 뒤집힌 판권면이었다. 하지만 나는 책을 바꿀 생각이 없다. 104-119쪽이 통째로 뒤집혀 묶였다. 뒷표지 날개의 오후시선 시리즈도 엉뚱한 사진이 올라있다. 마지막은 부제 ‘격외론’이 일련번호로 붙은 3부의 시들에서 첫 시 「그때는 울고 지금은 웃다」(66쪽)의 전문이다.

 

한 여인이 자살하러 지리산에 왔다가 그냥 갔다 // 새끼손톱만한 청노루귀 한 송이 보았을 뿐 / 서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서울에선 죽을 일이 지리산에선 도무지 죽어 마땅한 일이 아니었다 // 태양은 절대로 골고루 비추지 않는다 / 아니고 아니고 또 아닌 것을 알았으니 // 그때는 울고 지금은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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