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진실의 흑역사

대빈창 2022. 3. 4. 07:00

 

책이름 : 진실의 흑역사

지은이 : 톰 필립스

옮긴이 : 홍한결

펴낸곳 : 월북

 

비영리 팩트체킹 기관 ‘풀팩트Full Fact'에서 일하는 언론인·작가 톰 필립스를 온라인의 신간 서적을 검색하며 알았다. 『진실의 흑역사』를 군립도서관의 희망도서로 주문했다. 책을 대여하며 한 해 전에 출간된 『인간의 흑역사』(월북, 2019)에 먼저 손이 갔다. 인간의 화려한 실패사를 지적이고 유머러스한 필치로 그린 것이 『인간의 흑역사』 이었다면, 『진실의 흑역사』는 풍부한 자료를 바탕으로 한 예리한 시선으로 독자를 거짓말, 개소리, 허튼소리의 놀라운 세계로 안내했다.

옥스퍼드 사전은 2016년 올해의 단어로 ‘탈진실post-truth'를 선정했다. 부제가 ‘인간은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한다’였다. 정치인은 기만하고 장사꾼은 사기치고, 언론은 가짜 뉴스를 퍼뜨리고, 돌팔이 의사가 판을 쳤다. 헌사는 북극탐험가 빌햐울뮈르 스테파운손이 1936년에 쓴 『오류 탐험』에서 끌어왔다. “인류 문명의 가장 두드러진 모순은, 말로는 진실을 그 무엇보다 숭상하면서 실제로는 철저히 도외시한다는 것이다.”

1798년 제임스 레널이 「북아프리카 지리상의 발견 및 개척 현황도」라는 제목의 지도를 펴냈다. 그 후 100년 동안 유럽과 미국에서 만든 지도 대부분에 콩산맥Mountains of Kong이 등장했다. 콩산맥은 아프리카의 또다른 등줄기이자 나일강의 발원지인 ‘달의 산맥’과 만나면서 대륙 전체를 허리띠처럼 남과 북으로 양분하는 험준한 장벽이었다. 문제는 콩산맥처럼 ‘달의 산맥’도 현실에 존재하지 않았다. 세계지리의 허튼소리는 ‘노력 장벽’과 ‘정보공백’이 대규모로 나타난 결과였다. 인류사 대부분은 장거리 여행이 불가능했다.

역대 최고 사기행각의 주인공은 스코틀랜드의 그레거 맥그레거였다. 그는 자칭 스코틀랜드의 그레거 씨족 Clan Gregor을 대표하는 씨족장이자, ‘스코틀랜드의 로빈 후드’로 알려진 전설의 의적 로브 로이의 후손이었다. 맥그레거는 1821년 말 신문광고를 내기 시작했다. 중앙아메리카의 지상낙원 ‘포야이스’의 땅을 사라는 광고였다. 고국 스코틀랜드 사람들 수백 명이 집과 재산을 처분하고 망망대해를 건너왔다.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밀림이 울창한 오지 중의 오지였다. 이주민 대부분은 개고생 끝에 1년을 못 버티고 대분분 죽음을 맞았다.

‘지상 최고의 흥행사’ P. T. 바넘은 19세기 중엽 서커스와 특이한 전시회로 큰돈을 벌었다. 전시 품목은 단 하나였는데 조이스 히스라는 여성이었다. 161세로 조지 워싱턴의 보모라고 주장했다. 히스는 워싱턴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70대 후반의 노쇠하고 눈 먼 노파였다. 20세기 가장 특기할 만한 돌팔이 의사로 존 R. 브링클리가 있다. 그는 ‘염소 정소 의사the goat-gland doctor'로 잘 알려졌다. 의사는 발기부전 치료 목적으로 염소 고환을 남자에게 이식했다.

오늘날 벤저민 프랭클린(Benjamin Franklin, 1706~1790)은 미국 건국의 아버지로 추앙 받고 있다. 프랭클린은 ‘사기의 달인’으로 책의 실질적인 주인공이었다. 그는 10대 시절부터 84세의 나이로 세상을 뜨기까지 황당한 농간을 꾸준히 저지르며 즐겼다. 최초로 성차별의 이중적 잣대에 맞선 여성해방운동가로 불리어도 무방한 18세기의 '폴리 베이커 이야기'를 지어냈다. 사생아를 낳은 혐의로 다섯 번이나 법정에 선 폴리 베이커는 감동적인 법정진술로 무죄를 끌어냈고, 판사와 결혼까지 했다.

열여섯살의 프랭클린은 '사일런스 두굿'이라는 중년 과부의 이름으로 편지 열네통을 신문사에 투고했다. 수많은 독자가 두굿 여사의 펜이 되었고, 그중 몇 명은 그녀에게 청혼까지 했다. 그는 1730년 자신이 간행하던 신문 《펜실베이니아 가제트》에 한 마녀재판에 관한 기사를 완전히 지어냈다. 1755년 한 도도한 영국 숙녀와의 논쟁에서 이기려고 존재하지 않는 창세기 51장을 가짜로 인쇄해 성서에 끼워 넣었다. 1732년 프랭클린은 ’리처드 손더스‘라는 필명으로 《가난한 리처드의 책력》 첫 호를 냈다. 그는 돈이 되는 책력사업을 장악하기 위해 선두주자 타이탄 리즈의 죽음을 예언하는 글을 싣고 놀려 먹었다. 사망설에 충격을 받은 리즈는 어찌된 일인지 진짜 죽었다. 프랭클린은 요즘 인터넷 용어로 ’트롤‘, ’어그로꾼‘이었다. 그가 말했다. “인류가 저지른 오류의 역사는 인류가 이룬 발견의 역사보다 더 값지고 흥미로운 것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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