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되새김질하다

slow life

대빈창 2010. 9. 24. 18:59

 

책이름 : 슬로 라이프

지은이 : 쓰지 신이치(이규)

옮긴이 : 김향

펴낸곳 : 다자인하우스

 

 

 너무 늦게 책을 만났다. 책이 출간된 지 벌써 5년이 흘렀다. 손에서 책을 안 놓은지가 25여년이 다 됐다. 학습체계라는 계획성과는 거리가 먼 즉흥적인 책과의 인연대로 독서하는 기질이라 순서가 뒤죽박죽이다. 한마디로 좌충우돌, 우왕좌왕하는 책읽기는 환경생태 입문서 성격의 이 책을 지금에야 만나게 되었다. 저자 쓰지 신이치는 한국계 일본인으로 한국 이름은 이규다. 문화인류학자이자 환경운동가로서 21세기의 가장 시급한 대안으로서 친환경적이고 '지속 가능'하며 글로벌에 맞서는 방법으로 'slow life'를 삶의 방식으로 제시한다. 이 책은 '슬로 라이프'의 다양한 현장을 70개의 키워드로 정리해 일목요연하게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또한 해당 키워드의 주제를 심도깊게 안내하기 위한 방편으로 관련 저서, 웹 사이트 등 '깊이 알기' 코너를 40여개나 첨부하여 종합적인 이해를 위한 안내서 구실을 톡톡히 한다.

지금 세상은 신자유주의라는 세계화가 인류의 삶을 도탄에 빠뜨리고 있다. 작금의 세계화는 서구 문명과 경제 제도라는 틀 속에 전 세계를 강제적으로 편입시킨다는 의미에서 제국주의와 같다. 다만 노골적인 침략, 착취, 억압이라는 구시대적 식민주의와 달리 교묘하게 개발과 발전이라는 이데올로기를 주입하는 것이 다를 뿐이다. 그 개발과 발전이라는 지표가 GDP(국내 총생산)이다. 하지만 GDP는 사회 제반의 불균형과 모순, 환경파괴 등을 경제적 이익과 맞바꾼다. 역설적으로 GDP를 올리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은 전쟁이다. 인류와 자연에 대한 파괴와 폭력이 GDP를 가장 빠르게 성장시키는 것이다. 또한 숲을 모두 베고, 동물을 포획하고, 광물 자원을 모두 파낸 뒤 다른 장소로 이동하는 자본주의적 개발이란 자연을 하나의 자원으로 밖에 취급하지 않는다. 지구환경의 위기란 경제 시간의 틀에 생태계 시간을 강제로 끼워 맞추어 삶의 기반인 생태계 자체를 위태롭게 만든 것을 말한다.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호모 사피엔스는 특별한 종이 아닌, 이 지구상 다양한 종들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생태계 가족의 일원으로서 인류가 유일하게 살수있는 별 지구에게 막대한 부담을 지워 온 그 동안의 과학기술에 대한 통념을 재정립해야만 인류도 살고 지구도 살수 있다.

나는 지난 여름 슬로시티인 전남 신안 증도에 다녀왔다. '슬로시티'란 이탈리아 중북부의 작은 마을 '그레베 인 키안티'에서 시작된 환경, 자연, 시간, 계절을 존중하고 우리 자신을 존중하며 느긋하게 사는 운동을 말한다. 우리나라는 아시아에서 최초로 '슬로시티'를 탄생시켰다. 2007년 전남 담양 창평, 신안 증도, 완도 청산도, 장흥 유치가 인증을 받았고, 2009년에는 경남 하동이 합세했다. 신안 증도는 자연친화적인 우렁이 농법이 전체 벼농사 재배면적의 80%를 차지하고, 이제는 눈씻고 찾아볼 수밖에 없는 천일염을 제조하는 자연 염전이 드넓었다. 섬의 시간은 한정없이 여유롭고 느리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런데 '엘도라도 리조트'에 들어서면서 나는 눈살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아니 휘황찬란하고 비까번쩍한 더러운 도시문물이 슬로시티의 한구석을 장악하고 있는것이 아닌가. 나는 경악했다. 슬로시티에 들어선 거대자본. 섬의 느린 시간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일 것은 명약관화하지 않은가. '시간은 금이다'라는 벤저민 프랭클린의 말을 어느 국가, 민족보다 확실하게 몸에 베인 한국인의 근면성은 '한강의 기적'을 낳았다. 하지만 그 '기적'이란 것은 다름아닌 부족한 자원의 해외 의존도 심화이기도 하다. 화석연료인 석유에 기댄 현대문명이란 사상누각에 불과하다. 그 모래성이 무너지는 시점인 오일피크가 눈앞에 다가오고 있다. 다가오고 있거나 말거나. 친환경(?)이라고 공권력으로 우격다짐하는 국책사업 '4대강' 개발에 도박장이 갖춰진 유람선을 띄운단다. 그럼 그렇지. 뭐 눈에는 뭐만 보이는 법인가. '슬로 라이프'의 첫걸음은 산책이다. 나만이라도 느린 걸음으로 아침 봉구산 산책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다. 슬로 라이프는 곧 시골생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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