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이름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지은이 : 박민규
펴낸곳 : 예담
겉표지 날개에 표지 이미지에 대한 설명이 적혀있다. 그림은 스페인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시녀들'로 1656 ~ 1657년에 제작되었다. 현재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날개의 그림이 원작이다. 왜냐하면 그림의 주인공인 공주 마르가리타가 서있는 중앙에 빛이 환하고, 주위를 둘러싼 시녀들은 부차적 인물로 모서리로 갈수록 점차 어두워진다. 소설의 제목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프랑스 작곡가 모리스 라벨이 1899년 루브르 미술관의 벨라스케스의 '왕녀 마르가리타'의 초상을 보고 영감을 받아 만든 피아노 연주곡의 제목이다. 이제 연결이 된다. 표지 그림 '시녀들'의 주인공인 '공주 마르가리타'가 자라 왕녀가 되었을 때 그린 초상에서 얻은 영감으로 작곡한 피아노 연주곡이 이 소설 제목의 모티브가 된 것이다. 참고로 '파반느'는 16세기 초엽 이탈리아에서 번성하여 17세기 중엽까지 유행했던 궁정무곡이다. 그림의 주인공인 '마르가리타'는 에스파냐의 황녀로 식민지 네덜란드에 대한 지배 강화의 일환으로 절대주의적 종속정책의 섭정을 펼쳤으나, 네덜란드 독립전쟁 전야로 정세가 불안해지자 퇴임한다.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그림의 명암 구도가 뒤바뀐 표지 그림이 소설의 여자 주인공을 암시한다. 표지 그림은 주인공 '소녀 마르가리타'가 어두운 배경으로 처리되고, 그림속 인물중에서 유일하게 못생긴 시녀에게 환하게 빛이 쏟아진다. 소설은 정상적인 사회 생활에 지장을 받을 정도로 못생긴 처녀와 번듯하고 아름다운 부모에게 버림받은 정신적 외상을 공유한 두 명의 남자가 등장한다. 일년내내 세일을 터뜨리는 백화점이 공간적 배경으로 이들 세 명 청춘들의 우정과 사랑 이야기가 소설의 전부로 20대 성장소설이라 말할 수 있다. 이 소설은 십여년 전 어느 비오는 날, 작가의 아내가 무심코 '제가 아주 못생긴 여자였어도 사랑해 줄 건가요?'라는 질문에 십년 동안 작가의 가슴 한구석에 묵혀 있다 발효된 늦은 답인 셈이다. 이 소설은 2008년 12월부터 2009년 5월까지 인터넷서적 yes24에 연재된 글로 가끔 나의 눈길을 끌다가 이제야 한 권의 책으로 묶인 것이다.
'세상의 모든 남자와 마찬가지로 저는 못생긴 여자를 사랑하지 않는, 또 결코 사랑할 수 없는 인간이었습니다.' 작가의 말에 나오는 솔직한 저자의 고백이다. 그렇다. 저자는 이 땅의 마이너들을 위로하는 작품을 계속 발표하여 '마이너리티들의 히어로'라는 부러운 찬사를 듣고 있다. 그러기에 승자독식의 이땅에서 약자인 나의 책장에 저자의 모든 작품이 어깨를 겯고 있는 것이다. 이 땅의 약자인 못 생긴 자, 못 배운 자, 가지지 못한 자는 야만에 가까운 멸시와 천대를 이겨내야만 삶을 지속할 수 있다. 20대 자살율 1위를 기록하는 잘난 이 땅의 교육을 연일 칭찬하는 버락 오바마는 도대체 무엇을 떠들고 있는 것이며, 그것이 무슨 큰 자랑이듯이 도배질하는 언론매체를 보면 나의 입은 다물어지지 않는다. 이젠 천박을 넘어 유치의 경지에 이른 몰골이다. 책씻이 후 어쩔수없이 나는 소설 주인공 나이 때인 20세 첫사랑을 떠올린다. 그녀를 처음 본 것은 도화꽃이 만발한 화사한 봄이었다. 일요일이었다. 평소 발걸음이 미치지않던 마을 끝머리 과수원으로 이어진 수로길을 따라 걷고 있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만개한 복숭아 과원 안에는 집이 한채 있었다. 수로를 계속 따라 갈까 아니면, 과원으로 접어들까 머뭇거리는데 도화꽃 속에서 선녀처럼 불현듯 그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아마! 나도 모르게 바보처럼 입을 벌렸을 것이다. 고교 졸업반인 나는 여적 그렇게 아름다운 여자를 본 적이 없었다. 콩깍지가 끼었거나, 제 눈의 안경이 아닌, 지금 생각해도 그녀는 현대적 미인의 모든 조건을 구비한 아름다운 처녀였다. 어깨를 덮는 긴 생머리에 하얀 피부 그리고 무엇보다 이목구비가 뚜렷했다. 나를 스쳐 내가 오던 방향으로 거슬러 사라진 그녀는 강화도의 부속 섬에서 몇달 전에 이사를 온 동갑내기였다. 집이 가난해 중등만 졸업하고, 시골 구석까지 떠밀려온 영세공장에 다니는 공순이였다. 고교졸업 후 하릴없이 술주정과 땡강으로 소일하던 나는 안면몰수하고 그녀의 집을 드나들었다. 그녀의 오빠와 남동생을 만난다는 핑계로. 개갈 안서는 삼수로 대학에 진학했지만, 촌구석에서 나의 위상은 그런대로 괜찮았다. 그때만 해도 시골에서 4년제 대학생은 눈을 씻고 찾아야만 했다. 낭만적 객기로 탄광을 찾는 등 이레저레 젊음을 소비하면서도 나는 안양으로 이사한 그녀를 찾았다. 인천에서 공장생활을 한다는 소식을 얻어 부평공단까지 찾아갔지만 그녀를 만날 수 없었다. 친구들 사이에서는 이런 풍문이 나돌았다. 대학생이라는 녀석이 공순이 엉덩이나 쫒아다닌다고. 점점 나는 화염병과 최루탄이 난무하는 거리에 나서면서, 그녀에 대한 나의 사랑이 배부른 자의 놀음타령으로 보였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그녀의 결혼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때 나는 대학을 졸업하고 자발적인 공돌이 생활을 하고 있었다. 아! 그녀의 이름은 끝자가 '분'으로 그 시절에도 촌스러웠다. 입이 벌어질 정도로 보기드문 미모의 소유자였지만 촌구석에서 공장을 다녔던, 배우지 못하고 가지지 못해 마이너리티의 삶을 살았던 그녀. 아무쪼록 행복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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